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든가 Feb 07. 2024

친구가 책 때문에 인생 망가진다고 한다.

마음 들여다보기.

 나 같은 인간관계는 정확히 이렇게 비유된다. 좁고 깊은 우물. 새로운 사람을 더 찾지 않은 채 편한 기존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보수적 성향을 띤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 새로움이나 설렘은 메마른 지 오래고, 유지에 신경 쓰다 보니 손해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즉 새로운 피가 수혈이 되지 않으니 기존 피가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먹고 싶은데로 못 먹는 당뇨 같은 모양새다. 


 근본적 원인은 MBTI로 쉽게 정의되는 내향적 사람이기 때문이며, 자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미는 그에 걸맞게 독서와 글쓰기인데, 특히 책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실제로 주로 읽는 책들은 고전 혹은 해당 분야 권위자의 저서인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남긴 생각을 보며 자주 감탄한다. 이런 지적인 취미가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는 합리적 이유였고, 종래엔 쇼펜하우어식 고독을 향유할 생각까지 했다. 


 문제는 내가 20대라는 점이다. 머리에 잡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냉소에 빠지기 쉽다. 그 이유는 뚜렷한 가치관이나 신념 없이 지식을 내리받았기 때문인데, 이는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게 하는데 일조한다. 그러다 보니 경험해 온 한국 사회만이 지닌 수지타산과 권력구조, 그리고 이익으로 엮인 이해관계가 사람을 판단하는데 첫 번째 관문이 되었다. 즉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순수를 잃고 속물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속물근성은 싫어한다. 이런 모순적인 면이 오는 사람을 안막고 싶으면서도 선을 긋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디서 읽고 말할 줄은 알다 보니, 또래와 맞는 대화 상대를 찾기는 어려웠다. 고대 그리스 전쟁사나 스토아 뭐 뭐.... 이데올로기.. 이러쿵... 이런 얘기는 나도 하고 싶진 않다. 보통 내 또래는 게임이나 스포츠, 혹은 스트리머 같은 대중문화나 연애나 겪은 사람 같은 경험적 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동년배를 만날 때 뚝딱 거리게 되었고, 부자연스러운 반응과 사람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었다. 잘하지 못하니 작심 삼일 하는 취미 생활과 비슷한 게 인간관계에 적용되어 버렸다.


 언제나 글을 쓰며 내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을 만나는 지혜는 무엇인가... 이대로면 괜찮은가... 에 대해 성찰과 고민을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답은 나와도 행동으로 옮겨질 만한 생각 변화가 생기질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는 내 생각을 뛰어넘는 대답을 했다.


 대가리에 겉멋 들어서 그럼.

생각을 좀 버려라. 직관적으로 살아야 할 때도 생각을 하려 하니 그렇다.

또 그 생각이 비판적이거나 답을 찾는 사고다 보니 굳이 안 느껴도 될 피로를 많이 느끼는 거다.


 이 말에 더해, 넌 사람을 만나길 원하는데 책 그렇게 읽다 보면 너 망치는 거밖에 안된다. 책 좀 그만 읽고 사람부터나 만나라는 훈수를 들었다. 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원인과 이유를 알기 때문에 그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유 없이 잘 대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니 친구는 대답했다. 


 그런 걸 생각 하려 하지 말라고. 좋게 잘 자란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남에게 잘해주고 기쁘게 해주려 한다. 네가 인간관계를 굳이 고찰하려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안 만나는 걸 넘어 못 만나는 게 아니냐...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잘해주는 것에 이유가 필요했고, 나 역시 지금 친한 친구들에게 뭔가를 바라며 잘해주진 않았었다. 그냥 사람과 사람사이는 잘해주는 게 디폴트 값인 거고 그게 착한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 있는 이유였다. 세상을 경험하면서 착한 사람은 칭찬이 아니고 욕이라는 생각과 이유 없이 남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됐던 시기. 그때 이미 순수를 잃어버리며 사람도 잃은 듯 하다. 


 새로운 사람이 어려운 건 나이가 들 수록 기존 친한 사람들을 대체할만한 경험과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에게 그 정도를 기대하는 건 텃세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심으면 바로 자라는 게 아니라, 시간과 관심 그리고 따듯함이 있어야 자란다. 최근 동안 당연한 사실을 잊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관심과 따듯함을 잃지 않은 채 길게 오래 보는 것. 


생각은 잠시 휴양지로 보내고 마음에 사람을 들여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