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네에서 맛 보는 에세이.
내가 사는 곳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다. 서울의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이는 엠코 헤르츠 상가부터 오랜 시간 비바람에 풍화되어버린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은 뉴타운 상가까지 수많은 음식점들이 위치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직관적인 이름과 브랜드로 손님을 끌기 위해 간판에 최대한 신경을 쓴다.
예를 들어 백종원 씨의 프랜차이즈 같은 경우다. 누가 봐도 미정국수는 국숫집이고 홍콩반점은 중국집이다. 거기에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집어넣어 차별성을 집어넣는다.
하지만 간판에 연연하지 않은 담백한 음식점이 하나 있다. 간판에는 신경 써도 자기네 음식엔 무심한 몇몇 음식점들과는 달리 담백한 간판만큼 맛도 정직하게 꾸려 나가는 곳이다.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게 하는 저 수수한 간판과 가게 이름은 지극히 원시적인 것과 다름없다. 내 친한 친구는 이곳의 사장님과 사적으로 알 정도로 단골이지만 그 친구마저도 이곳을 지칭할 때는 '그 국숫집'이라고 부른다. 틀림없이 이곳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면 글자가 그래도 선명히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은 글자마저도 안 보이는 그야말로 간판이 없는 거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단 말이 있듯이, 미금역에 오래 산사람들이면 이곳의 존재를 모두 알고 있다.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한 끼 감사히 먹을 수 있는 소박한 맛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식당에 붐비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동네에서 오래 산사람들 일 것이다. 그들로 인해 언제나 점심시간엔 꽤 붐빈다. 다행히 자리가 하나 남아있어서, 착석할 수 있었다. 날씨가 꽤 더웠던 탓에 물 한 컵을 먼저 마시고 천천히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말끔한 메뉴판은 간판과 달리 음식만큼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장님의 신념이 보였다. 나는 잔치국수를 시키고 이곳 단골인 내 친구는 냉메밀을 시켰다. 여기가 잔치국수와 비빔밥집이지만 사실 숨겨진 메밀 맛집이라는 친구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나는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잔치국수를 선택했다. 그리고 국수만 먹기 심심해서 만두까지 주문했다. 나눠먹을 음식이 존재해야지 식사 자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곱빼기로 시켰던 나는 언 듯 봐도 푸짐한 양에 안도감을 느꼈다. 최소한 이 국수를 먹고 난 후에 출출함이라는 잔고장은 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우선 면을 먹기 전 국물부터 먹어보았다. 이런 면 요리는 국물부터 먹는 게 국룰이라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일본의 어느 장인이 운영하는 라멘집은 국물 먼저 먹지 않으면 쫓아낸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국물을 한입 삼키니 혀가 데일 정도로 뜨겁진 않지만 강하게 단련된듯한 육수의 뜨듯함이 내 식도를 가로질렀다. 그게 내 위장을 지나니 몸을 따듯하게 해 줘 얼큰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면발은 부드러웠지만 그렇다고 힘이 없지 않았다. 그 이유 때문일까 면발은 세차게 흡입함에도 전혀 끊어짐 없이 육수 머금은 면발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해 줬다. 이곳의 김치가 풍미를 더해줬는데, 정말로 아삭하다. 설렁탕집을 가면 김치 맛만 봐도 견적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곳 김치는 증명을 가뿐히 해주었다. 오랜 기간과 많은 손님에 지쳐 풀 죽어 있는 김치가 아닌 새로운 손님이 오길 고대하고 있는 싱싱한 김치 같았다. 그렇게 김치와 한 입하고 만두를 먹으니 막걸리가 절로 생각났다.
만두피는 쫄깃하면서도 찰기가 있었다. 쫀득한 만두피와 담백한 만두소의 조합은 사이드 메뉴로는 과분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런 메뉴가 사이드로써 메인을 장식해 준다는 게. 그렇게 정신없이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혼자 드시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면 모자라시냐고 정답게 물어보는 거였다. 미금역에 아직 이런 데가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시절의 지금은 사라진 음식점들을 잠시나마 떠올렸었다.
실제로 이곳은 내 어린 시절에도 굳건히 존재하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먹는 한 끼가 더 특별한 것 같다. 음식을 먹었을 때 삶의 감상적 요소를 떠오르게 하면 그곳이 맛집이다. 맛 자체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 음식이 내는 느낌은 어디 가서 사기 쉽지 않다.
내게는 이 국숫집이 인생 맛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