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분은
이 글을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지금의 생각을 하게 된 과정과
그 이유를 알면 [생각]으로부터 자유해질 겁니다.
우선 생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봅시다. 생각은 사실 굉장히 포괄적이고 중의적인 개념이죠. 생각이란 말 자체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단 말이에요. 우리는 기억을 생각이라 부르기도 하고, 발상을 생각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상을 생각이라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 기분을 생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기억) 나 예전에 제주도로 여행갔던 생각이 났어.”
“(발상)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상상) 우리가 전원주택에 살게 되는 생각을 해봤어.”
“(느낌) 설레는 생각이야.”
이런 생각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생각들이 곧 ‘나'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모든 형태의 생각들이 ‘나'라고 할 수는 없어요. ‘나'는 생각보다 훨씬 광대한 무엇이거든요.
‘나’는 생각을 인식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생각'을 곧 ‘나'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좋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좋은 생각'이 곧 ‘나'이지 않아요. 반대로, 나쁜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나쁜 생각'이 곧 ‘나'이지 않고요. ‘나'는 그런 생각들을 인식하여 수용하거나 잠시 머물게 하다 떠나보낼 수 있는 존재죠.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어 ‘나'에게서 작동하는 걸까요?
생각의 작동은 크게 2가지 영향으로 나눠볼 수 있어요.
1. 기질
2. 사회화
선천적인 기질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뤄보도록하고 이번에는 ‘사회화'라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저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라는 요소보다 먼저 알아야 할 개념이 ‘사회화'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기에 앞서 사회화를 경험하기 때문이죠.
사회화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재무적 가치까지 한정짓게 만들 수 있어요. 학창시절을 한 번 떠올려볼까요? 한 학급에 학생 수가 얼마나 됐었죠? 적은 학급은 10~20명이었을 거고, 많은 학급은 30~40명 정도였을 겁니다. 그 학급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선생님은 몇 명이었죠? 네, 1명이었겠죠.
생각해봅시다.
1명의 선생님이 30여명 가량의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정말 가능한 걸까요? 우리는, ‘언어'로 교육을 받았을지 몰라도 ‘비언어'로 세뇌를 당했습니다. 한 명의 권위자(선생님)가 말을 할 때엔 조용히 순응해야 한다는 세뇌죠. 50분 동안 조용히 순응하고, 10분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잖아요.
우리는 이걸 몇 년이나 반복했을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만 계산하더라도 12년입니다. 12년 동안 권위자에게 순응하는 세뇌를 당한 겁니다. 근현대 한국의 부인할 수 없는 사회화 체계죠.
학창시절에 이런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어떤 식으로 사고하게 될까요? 어떤 식으로 생각이 작동하게 될까요?
이런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면 어른이 된 이후, 궁금한 게 있을 때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 될까요, 묻지 않고 순응하는 사람이 될까요? 잘못된 것을 고쳐서 개선하려는 사람이 될까요, 그저 순응하는 사람이 될까요? 생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면 아토믹 트리거를 실천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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