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돌아보며
차갑고 어두운 도시. 양페이가 눈을 뜬 곳은 어딘가 쓸쓸하고 흐릿한 꿈속 같은 도시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했던 양페이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 내가 죽었구나, 하고 말이다. <제7일>은 양페이가 저승에서 겪게 되는 7일간의 이야기다. 양페이의 사랑,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도 보여주며 독자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에게 인생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사는가.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 위화는 그의 소설 <인생>의 서문에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며 인생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도 위화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제7일을> 마무리하기에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그 자체가 멋진 일이고 사랑할 만한 것이지만(그리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지만) 거기에 조그만 답글을 달아보고자 한다.
양페이의 삶은 <인생>의 후구이 노인처럼 순탄치가 않다. 위화는 왜 이렇게 주인공을 괴롭히는지(?) 모르겠지만, 양페이가 게임 캐릭터라면 초기 스탯 주사위를 잘못 굴려서 LUCK에 0을 찍은 캐릭터와 같다. 양페이는 친모의 실수로 기찻길에 버려져 양아버지의 손에 크게 된다. 직장에 들어간 뒤로 사랑하던 여인 리칭과 결혼하지만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그녀를 결국 부자 사업가에게 보내주게 된다. ‘사랑하지만 너의 행복을 위해서 보내줄게' 같은 이별 노래 가사에 걸맞은 상황이다.
이렇게 가난에 찌들고 운명이 주는 시련에 흔들려도 양페이의 인생이 그렇게 불행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양페이가 주고받는 사랑이 고난과 시련보다 밝기 때문일 것이다. 양아버지는 양페이를 우연히 거두어들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바쳐야만 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성인군자 같은 도덕심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다. 양페이를 얻었을 무렵 결혼할 뻔한 여자를 만났지만 그녀와 양페이 사이에서 갈등한 양아버지는 결국 양페이를 고아원 근처에 두고 오게 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날 자신은 양페이를 버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 양페이를 데려와 죽는 순간까지 양페이와 함께하게 된다. 양페이도 이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아픈 아버지를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아버지 곁을 지킨다.
연인 간의 사랑도 그렇지만 부모 간의 사랑도 관계를 맺는 순간 마법처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사건과 갈등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작은 선택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이 모여 사랑의 형태를 결정짓는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은 완성되어 있는 완제품이 아니라, 하나씩 조립해 가는 레고 블록 같은 것이다. 동봉된 설명서와 같이 정해진 방법으로 조립하는 방법도 있지만 레고 블록으로 어떤 사랑을 할 것인지는 조립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지금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삶의 끝에 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중간에서는 어떤 영화인지 가늠할 수 없듯이 말이다. 삶의 마지막에서 나는 내 인생을 어떤 영화(책)로 기억하게 될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소설 <제7일>은 내 삶을 돌아보게끔 만드는 거울 같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