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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28. 2016

아버지의 귀

바람에서 아버지의 담배 냄새가 난다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아버지의 귀    


  

김경득은  황악산 자락 나부리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살다 서른에 결혼 삼 년 만에 김용순과 이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밥을 미련하게 많이 먹어서라고 한다. 서른셋에 스물두 살의 이순임을 사랑하게 되었다. 말술을 들이켤 정도의 주량이었으나 술로 인하여 부동산 중도금 주는 날을 놓친 이후 평생을 단주하였다 농사일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담배는 칠십 평생 피웠으나 건강을 위해 금연 선언 따위 하지 않고 말없이 하루아침부터 피우지 않았다 “아부지, 용돈 주세요.” 한번 말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그는 첫 아들에게 달라는 대로 이유를 묻지 않고 돈을 주었다. 부인에게 자상하였을 뿐 금연 후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알사탕 하나 돈 주고 사 먹지 않았다. 자식들은 물론 일남육녀에게서 난 손자손녀들을 위해 방 두 개를 하나로 개조하고 천정을 화안히 비치게 유리로 갈아 넣었다. 아마 한 가정집의 방으로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늘 없는 방이 아니었을까 집 안 구석구석 부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개조해주곤 하였다 방구들 놓는 것부터 시멘트로 마루를 만들어주고 마당에도 한여름에 쉴 포도넝쿨 우거진 쉼터를 만들어주었다. 우산이나 자전거 라디오 등 가정에서 쓰던 모든 물건은 거의 스스로 고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자식들로부터 용돈을 얻으면 부인이 절에 갈 때나 손자손녀들에게 명절 때마다 빳빳한 지폐로 나누어 골고루 주었다.  


아버지의 귀는 동이근, 

어떤 미세한 소리도 다 듣지.

물속이건 허공이건 들어가서 

우리가 원하는 건 다 알아차리지. 

말하는 걸 잊은 듯 

아무 말 없어도 

우리들의 사는 모습 다 알던 분. 

우리를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아버지,      


그가 간 곳은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적멸보궁의 잔디밭,

그 누구도 못 본 부처님을 보았는데

부처님 음성 듣고 휘휘 걸어가신, 

아버지 귀는 너무 커서 보이질 않는다 

포도잎에서도

바람에서도 

피우시던 백조 담배 냄새가 난다         




[딸의 에세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았고 담배만 많이 태우셨다. 큰소리 내는 적 없으셨고 언제나 다정하셨다. 손자손녀가 재잘재잘 이야기할 때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듣던 외할아버지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아주아주 가끔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는데, 엄마는 나보다 더 자주 자신의 아빠를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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