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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27. 2016

강아지털처럼 보드라운 창문

마음의 창문을 열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한다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강아지털처럼 보드라운 창문     


   

당신의 두 손등 위에

강아지털보다 보드라운 창문이 얹혀 있습니다.

당신은 무심히 창문의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합니다.    


당신의 취미는 일입니다.    


(잠이 안 오면 얼마나 좋을까. 밤새도록 일을 할 텐데.)

중얼거리는 당신의 곁에서

(어쩌면 당신은 잠이 그토록 잘 오세요? 나의 불면을 당신에게 선물로 드릴까요?)

물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당신이 애원하는 포메라니언의 노란색 털이 한 올씩 날리는 걸 볼 때

그 강아지털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까만 희망을 품는 여인에게

나는 증오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당신의 강아지를 시름없이 쓰다듬으며

정물화가 되어갑니다.    


당신의 두 손등 위엔 아직도

강아지털보다 보드라운 창문이 올려져 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취미는 일입니다.    


영원히 열 수 없는 강아지털보다 보드라운 창문을

손등 위에 달고

시지프스의 신화의 주인공처럼 시간의 공을

굴리고 있습니다.    


..10월 10일 빵데이라던가. 점심 먹다 말고 순식간에 이 시를 썼다.

마음의 창문을 열 수 없는, 창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며..

아마 그의 가슴이 손등 위에 달린 것이나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창문은 꼭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겨울을 위해 오히려 꼭꼭 여미는 일도 필요할 때가 있다.        

             



[딸의 이야기]    


이 시는 내가 처음 본 시다.

엄마가 오래전 모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 사이트에 오랜만에 가서 검색해서 가져온 시.

엄마가 아래에 남긴 글까지 그대로 옮겨왔다.


마음의 창문을 열 수 없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창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엄마였을까, 아빠였을까, 아니면 혹시 나였을까?

어쩌면 엄마의 상상 속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 시절 순식간에 시를 써 내려갔던 사십대 여인이었던 엄마를 생각하면 짠해진다.

그러는 한편 엄마에게 시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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