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 매거진 속 이야기들은 제가 혹은 누군가 겪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아, 물론 상상 속에서의 일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저는 소설이라고 부를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나다. 네 아버지다.
한 달에 한 번 통화를 할까 말까인데 요즘 들어 아버지의 전화가 부쩍 잦았다. 그것도 받자마자 매번 굳이 ‘네 아버지다’라고 말한다. ‘아버지’라고 다 뜨는데.
-반지 하나만 사주라.
그러고는 어김없이 뜬금없는 반지 얘기다.
-반지는 갑자기 무슨 반지예요.
퇴근시간을 십여 분 넘긴 시각, 키보드 위를 정신없이 오가는 손과는 달리 말투는 심드렁하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반지를 안 낀 지 얼마나 오래 됐냐. 죽기 전에 반지 하나 번듯한 거 끼고 싶다. 아버지 반지 사주는 게 그렇게 힘드냐. 집에 내려와서 금은방이나 같이 가자. 내가 몇 번을 말하는데 왜 너는 들은 척도 않냐.
말이 말 같아야 듣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행히 내뱉지는 않았다. 갑자기 숫자가 이상해서 모니터 화면에 집중 또 집중.
-야. 너 내 말 듣고 있냐?
귀찮다. 괜히 받았다. 받지 말걸.
-듣고 있어요. 엄마는요?
오늘도 야근이 되겠군. 엄마 바꾸면 아버지 전화 좀 그만하게 하시라고, 요즘 들어 왜 그렇게 전화하시냐고, 업무에 방해된다고 말해야지, 하는데.
-네 엄마는 또 마을회관에 갔다. 당최 집에 사람이 없어, 사람이.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어울리는 걸 싫어하던 엄마는 예순을 넘기고는 저녁마다 마을회관에 가서 어울리시는 눈치이다. 엄마도 이제 할머니네, 했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회관에서 제일 젊어. 그래서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손자손녀 있잖아, 그럼 할머니지 뭐. 엄마는 눈을 흘겼고, 그 모습이 소녀 같아서 사랑스럽다는 듯 웃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맘에 걸려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지 말고 아버지랑 집에서 놀아드리고 하세요.
-아버지도 같이 가서 노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그런 델 왜 가!
버럭. 칠순이 넘으신 뒤로 기력이 쇠해졌다 생각했더니 아니다. 내 어린 날에 그랬듯 아버지는 아직도 사소한 것에 언성을 높인다. 다시 한 번, 전화 괜히 받았다 싶다.
-아 왜 화는 내고 그러세요!
그러지 말고 아버지랑 같이 가시지 그러냐는 내 말에 엄마는 말했었다.
얘는. 네 아버지가 좀 재미없는 사람이니? 그러지 말고 네가 주말에도 내려오고 해. 거기서 여기 얼마나 된다고 한 번을 안 내려오니? 내가 안 그래도 안 가겠다는 것, 억지로 한번 데려갔었다. 네 아버지가 바둑을 둘 줄 아니,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니. 혼자 외톨이처럼 몇 시간을 앉아 있더니 어느 순간 보니 혼자 집에 가버리고 없더라.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냐!
아버지는 ‘화’란 말의 뜻을 모르는 걸까. 자신의 ‘화난 목소리’가 바로 지금의 목소리라는 걸 모르는 걸까.
-됐다. 끊자.
철컥. 내가 뭐라 말할 겨를도 없이 전화는 끊겼다.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렇게 일방적이고 무례한 사람과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무리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된다지만 칠순 넘은 노인네가 벌써 몇 달째 반지 타령이라니. 얼마 안 있어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될 텐데, 그런 제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비어 있는 건 아버지의 안중에도 없죠. 나야말로 화가 나서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해 한 소리 하려다가 그것마저 귀찮아서 관둔다.
그랬는데, 오늘 보니 아버지의 손가락이 이상했다. 몇 달 만에 집에 와서 별다른 대화 없이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가 도대체 그놈의 반지 타령은, 하는 생각에 울화통이 치밀어 아버지의 손을 봤을 때였다.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의 한 마디 정도가 잘려나간 듯 보였다. 그러니까 네 번째 손톱이 보이지 않는다. 살짝 접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가 없다.
아버지, 손이 왜 그래요? 하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아서 보면 손가락이 정말 잘린 건지 아니면 손가락 끝이 그냥 굽어진 상태라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다.
아버지, 손이 이상해 보이는데? 하면서 확인하는 건 아버지와 나 사이에 굉장히 어색한 장면일 테니까. 이따 밥 먹을 때 자세히 봐야지. 그런데 잠깐. 나는 밥을 먹고 왔잖아. 아버지랑 같이 밥 먹지 않을 텐데. 그나저나 엄마는 왜 아직도 안 오지? 빨리 와서 아버지 밥 차려주지 않고.
하는데 멈칫. 이건 뭔가. 대체 뭐지? 설마. 아버지의 왼손마저 계속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 왼손의 네 손가락이, 그러니까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모두…… 말도 안 돼. 하나의 손가락을 세 마디로 구분했을 때 손바닥과 연결된 한 마디 정도를 제외하고는 두 마디 정도씩이 잘린 상태.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농기구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맙소사. 도대체 언제, 왜? 엄마는 왜 내게 말을 안 했지? 설마, 엄마도 몰랐던 걸까?
너, 계속 엄마 탓만 하지 마. 너도 네 아버지 신경 안 쓰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나는 그래도 네 아버지랑 같이 살기라도 하지, 너는 얼굴을 비치길 하니 전화를 먼저 하길 하니. 네가 더 나빠.
마을회관 가는 문제 끝에 엄마가 정말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하던 말이 왜 지금 생생하게 귀에 재생되는 건지.
-도대체 언제 이렇게 된 거예요?
나는 놀란 가운데도 차마 아버지의 손 전체를 감싸지는 못하고 손목쯤을 엉거주춤 잡는다.
-대체 어쩌다가요? 엄마는 알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의 손이 낯설다. 그러나 그보다 낯선 건.
-몰라. 아무도 몰라준다.
힘없는 중얼거림에 바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꺼이꺼이. 칠순이 넘은 사내에게도 저런 눈물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잔인한 통곡.
그제야 반지를 사달라는 전화를 건 몇 달 전부터 아버지의 손은 저 상태였을 거라는 깨달음. 함께 울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버지의 저런 울음이 낯설고 무서운 자식은 가엾게도 눈물 한 방울 떨구지 못한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날 맞이한 건 어둠이었다. 어둠. 그래, 완전한 어둠. 몇 초 만에 익숙해진 눈이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자 밀려오는 쓸쓸함.
등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어쩌면 꿈속에서 울지 못한 눈 대신 등이 흘리는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자고 눈물조차 잃어버린 못난 자식이어서 악몽 한번 꿀 때 흘리는 온몸의 땀으로 눈물을 대신하는지.
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꿈이었을까.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 걸까.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액정에 뜨는 아버지라는 말.
-나다. 네 아버지다.
아버지가 반지를 사달라는 전화를 했던 건 현실이었던가. 아니면 현실이 아니었는데, 지금 현실이 되려는 모양인 건가.
-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반지 타령을 하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냐. 됐다. 반지 같은 건 됐고.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가 이어진다.
-반지 대신 목걸이를 사줘라.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반지는 못 사드렸으니, 목걸이만은 사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목걸이를 사가면, 아버지는 이미 목걸이를 걸 수 없는 상황일 것만 같아서.
이런 악몽. 어서 이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하다가 멈칫한다.
악몽에서 깨면, 그래서 현실이 되면, 현실은 더 악몽 같을 테니까.
아버지는, 이미 죽어서 현실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이니까.
악몽 속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만 아버지를 찾아가면 목이 잘린 낡은 몸만이 나를 맞이할 것만 같아서.
나는 악몽 속에서도 현실에서 그랬듯 멍하니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