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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n 21. 2024

죽고 싶지 않아도 떡볶이는 좋아!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거래

일용할 양식


오늘 도착한  '궁물-브랜드 표기 그대로- 마늘 떡볶이 밀키트', 아주 국물이 "끝내줘요!" : )

손바닥만 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는, 그 분야에서는 유명한 분의 그림 모음집을 며칠 전 주문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과 팔레트를 같이 찍은 콘셉트로 독립출판물을 발간한 분의 책도 같이.

우체국 택배가 온다는 알림이 떠서 주문한 책이 오는구나 했다. 그런데 택배물을 확인하러 문을 열었더니, 글쎄,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있었다.

"이게 뭐지?" 하기 전, 보내는 이가 카톡을 미리 보낸 뒤다.



'광안리 기상캐스터'로 부캐를 지은, 광안리에 사시는 페친이자 독자분이 소리 소문 없이 디저트를 보낸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일용할 양식을 감사히 받고, 어머니와 신나게 조리해서 먹었다. 밀키트라 집에 없는 파 대신 양파만 추가해서 열심히 사진 찍고 인스타에 올리고 먹었다.

여러 저자들의 책을 사서 리뷰를 올리고 경치 좋은 곳에 일부러 책을 가져가서 사진을 찍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시는 분이다. 물론 나도 답례로 다른 저자의 사인본이나 신간을 보내기도 한다. 저자와 독자, 독자와 독자, 페친이자 인생 동무로 서서히 정이 쌓여간다. 서로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하면서 부담스러운 고마움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거래로 성사시키기도...


나만의 놀이터


싸이월드 시절부터 현재까지 모든 미디어와 매체를 다 접하고 사용하진 않아도, 브런치와 페북은 놀이터이다. 유치원 모래밭에 나뭇가지를 들고 수없이 그리고 지웠던 것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놀이 도구가 된다.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고 분노하고 감격하는 순간들도 글쓰기 재료가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도착한 택배로 정신이 없었다. 감동받고 사진 찍고 먹고 웃고 소식 알리고. 독자의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에 내 책이 있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 사인본을 부탁한다. 지인에게 보낼 참이니 책값과 배송비까지 계좌로 보내주겠다며 알려달란다. 책값과 배송료는 일용할 양식을 받았으니 생략하고 선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우체국 다녀오는 길, 어느 한의원 앞 화단에 심긴 꽃이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고 말았다!

물론 책 한 권 팔면 책값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인세비를 받는다. 학원생은 줄어 월급도 반토막 난 상태, 다달이 나가야 할 빚에 대한 원금과 이자, 가정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되는 내돈내산 사인본 발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이 헛되지 않은 것은 돈을 떠나 누군가와 진실로 교류하는 과정이 복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 쓰기를 지속하는 이유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인지도 낮아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서로 부르는 사람도 못 된다. 그럼에도 책 쓰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이 좋아하는 일이고,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뭔가 떠오르면 그냥 쓴다. 그 순간이 지나면 흐려지기 때문에 떠오를 때 써야 한다. 사진을 찍어 어느 글과 조합하여 배치할까? 그런 생각들이 놀이 그 자체다. 삶이 지루하기 않고,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 할머니가 되는 것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그림책이나 독립출판물을 사는 이유도, 그림 작가님의 그림에 빠져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는 이유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실력과 상관없이, 현재 이력과 관계없이. 그냥 좋아서, 하고 싶어서, 꿈꾸면서 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강매하지 않는다. 영업에는 꽝인 기질도 있고, 무언가를 드러내고 주목받는 것에 큰 욕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존재로서 내가 나를 인정하는 여정으로 책 쓰기는 평생 함께 갈 반려자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나의 행복


"그렇게 해서 뭐가 남아요?"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신다. 그러게요, 이렇게 해서 뭐가 남죠?

좋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격려하면 하늘이 보상해 주겠죠, 하는 마음으로 우체국에 가서 빠른 등기로 사인본을 부쳤다. '광안리 기상 캐스터'가 선물해 준 디즈니 캐릭터 은행 봉투에 오천 원짜리 지폐를 고이 넣고 스티커로 봉한 후 책갈피와 함께 동봉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깜짝 선물이 되길.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점자 지도를 만들고, 그들이 읽을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출판사와 작가들을 만나며 협업하는 이에게 격려가 되길 바라며...

겨자씨가 커다란 나무가 되듯, 하늘에 심은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큰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고 과실이 열려 함께 먹고 나누며 웃을 수 있는 현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 걸었다고 빨개진 얼굴을 씻고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은 후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이 나의 행복이다!


p.s. 가난한 저자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앞으로는 책값과 배송비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 마음이 억울하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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