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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n 04. 2024

스스로에게 차려주는 밥상

일상을 사수하라!

우울할 때는 화장을, 낙심될 때는 밥상을


2024.06.03. 늦은 점심

평소 잘 꾸미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여성스러운 레이스나 시폰 소재에 마음을 빼앗기는 편이지만, 부지런하게 자신을 단장하는 자체에 큰 관심이 없기에 스킨과 선크림이면 외출 준비는 끝이다. 그런데 마음이 울적할 때는 립글로스를 바르거나, 평소 손도 대지 않는 아이섀도를 바를 때도 있다. 요즘같이 돈 걱정이 마르지 않을 때는 일부러 밥상을 신경 써서 차린다. 잘 먹고 힘내라고, 스스로에게 차려주는 밥상이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무엇을 할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마음이 건강을 해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니까. 무거운 마음을 일으켜서 일부러 더 신경 써서 밥상을 차린다.


2024.06.04. 늦은 아침. 호텔 조식이나 뷔페를 접하는 심정으로 접시에 따로 반찬을 담고 모양을 낸다.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지금, 바깥 놀이 나왔는지 아이들의 앙증맞은 소리가 간간이 들리다 멈췄다. 무슨 자랑이라고 밥상까지 소재로 들고 와서 이곳에 옮기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중요한 일이다. 자궁근종으로 산부인과에 주기적으로 초음파 검진을 다니고, 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덜컥 겁부터 나니까 건강은 중요한 요소이다. 혹이 커지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충수 터져 수술한 경험이 있는 내게는 엄청난 압박이자 두려움이다. 그래서 인스턴트 대신 집밥을 잘 차려먹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말 그대로 애쓰고 있다. 혈액 순환에 좋은, 어머니가 좋아해서 자주 끓여주는 미역국에 동생이 화분 텃밭에서 심은 채소에 반찬을 보기 좋게 접시에 담아 나에게 먹이고 있다.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진정으로 멘털이 강한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중에서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습관이다. 한식을 좋아해서 빵보다 밥이 들어가야 먹은 것 같다. 자발적 집순이라 감사하게도 칠순 넘은 어머니가 해준 반찬을 무기 삼아 힘을 내어 밥을 챙겨 먹는다. 관심 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청소를 하고 일을 하는 모든 것이 일상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살아있다는 것은 계속 움직이고 무언가를 지속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 느긋한 성격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다.

학원 아이들은 많이 줄어 월급도 깎여 집안 경제에 큰 도움이 못 되는 사람이다. 돈 걱정하는 이모 말에 첫째 조카는 이번 달 석식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책 몇 권 덜 사면 되는데, 민감한 청소년기에 속하는 아이가 그 말을 가슴에 담아두었구나. 얼마나 미안하고 속상하던지. 물론 아이는 매점이나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사 먹고 바로 학원에 가지만, 앞으로 아이 앞에서 말조심 단단히 하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일상 가운데 여러 가지 고민과 어려움도 겪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간다.


모든 찰나가 기적이다


동생이 선물 받은 생일 축하 꽃다발. 화훼기능장식사 자격증 소유자답게 재구성한 꽃다발!^^

"인생의 비극이란 사람들이 삶을 사는 동안 내면에서 잃어가는 것들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아니어도 우리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운이 빠질 때마다 되뇌는 말은 모든 찰나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더 불행하고 더 행복한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소중하기에 모든 사람들은 존엄하다. 그 속에 우리도 속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상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 분처럼 노숙자 사역을 위해 후원을 받고 밥을 짓고 오물이 묻은 그들의 옷에 손을 올려 기도할 용기도, 마음도 부족하지만. 꼭 거룩한 사역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거대한 우주 속 작은 먼지라도 존재해야 마땅한 귀한 생명들이기에. 우선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옮기기 전 내면에서 잃어가는 것들이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만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부어주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살아내고 살아갈 모든 찰나를 기적으로 느끼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차려주는 밥상


요즘 행복은 스스로에게 차려주는 밥상이다. 밥을 떠서 공기에 담고 수저를 챙기고, 텃밭에서 딴 방울토마토와 선물 받은 키위를 잘라 채소를 곁들여 담는다. 하트 뿅뿅 어머니표 매실 소스를 한 숟가락 붓고 김을 꺼내 접시에 놓는다. 이런 식의 소소한 순간이 모여 밥상 차리는 습관이 되고 그 루틴으로 건강을 지속하는 일이 앞으로 다가올 기회와 행복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인 셈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행복이다. 일상을 사수하기 위해, '사수'라는 거창한 단어를 썼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들이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음식을 먹고 바로 누우면 역류성 소화 장애가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지켜야 할 습관을 지속하는 힘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꽃봉오리야

이제 네가 꽃 필 차례다

네 생각이 꽃피울 차례다."

- 천양희 시인의 <감정의 가로등> 시 일부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천양희 시인이 말한 대로 그 생각이 꽃피울 차례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여전히 밥상을 차리고 먹고 움직이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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