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밑에서 먹은 건 괜찮아!"
"어머니, 어느 페친 아들이 배가 많이 아파 병원 갔더니...
사진을 찍어야 한대서 봤더니, 배에 가스가 가득 차서 시커멓게 나왔대요.
인스턴트를 많이 먹어서 그렇대요.
저도 요즘 라면이랑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 그런지 좀 불편해요."
예전과 달리 소화가 잘 안 되는 듯, 더부룩한 것 같아 어머니께 지인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밑에서 먹은 건 괜찮아!"
어머니가 의사도 아닌데, 왠지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어 그렇구나 수긍을 하고 말았다.
365일 집밥 챙기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밥과 김치가 들어가야 속이 편안한 전형적인 한국인인데, 면 종류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서너 차례 라면을 먹을 정도로 식생활이 아주 건강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점심도 면이다. 음식에 큰 욕심이 없고, 요리하는 것도 즐기지 않지만. 면 요리는 끓이고 수프를 원하는 강도로 조절해서 넣고 계란이나 채소를 부재료 삼아 넣어 먹는 과정이 요리 같이 느껴져서 내게 보상을 해주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는 밥통에 밥이 비어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인데, 정작 식구들은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킬 때가 많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냉장고에 남은 반찬들이 소비되지 않아 몇 날 며칠, 그대로 쌓여 있어도 어머니는 간단히 장을 봐서 새 반찬을 하신다.
"먹지도 않는데 새 반찬을 자꾸 하네..."
그러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잠들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저러다 쓰러지시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계속 움직인다.
왜 어머니를 안 닮아 요리하는 것도, 패션 센스도, 사진 찍는 구도를 보는 안목도 부족한 것일까? 아쉬우면서도 서로 다르기에 받아들여야지 마음을 다독인다.
나물 반찬은 냉장고에 넣어둬도 만든 지 며칠이 지나면 금세 쉬기 때문에 그전에 프라이팬에 남은 밥과 같이 넣어 볶음밥을 만들고, 프라이팬 자체로 상 위에 두는 어머니.
지인 아버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수미 감자 10kg를 샀다. 껍질 벗기고 삶아 먹기 좋게 그릇에 담아 놓은, 표 나지 않지만 많은 배려와 정성이 담긴 음식도 금방 소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가 하는 일을 보고 자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
어머니는 오늘도 집으로 오면, 밥솥의 밥이 얼마만큼 남아있는지 먼저 체크할 것이다. 한 그릇이라도 먹어 양을 비워야겠다. 여름 내내 계속된 폭염이 이침 저녁, 조금 꺾인 듯하면서도 여전하다. 어머니는 우리 집의 소란과 어려움을 동그란 감자처럼 깎고 깎아 평온하게 만든 천사다. 식구들 입에 본인이 만든 음식이 들어가면 "맛있냐?"며 묻고 "너무 맛있어요!" 대답하면 얼굴에 웃음이 퍼지는 사람.
저질 체력인 나는 요즘 집안일도, 독서와 글쓰기도, 걷기마저 심드렁해질 만큼 의욕이 없다. 오늘은 어느 책을 읽고 이러면 안 되겠다 결심하고 그냥 쓰는 중이다.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도, 영감을 주는 사진이 없어도, 그냥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쓰고 있다. 삶은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웃으면 행복한 게 아닐까? 그런데 요즘 의욕이 꺾인 것은 무슨 연유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힘이 없다. 너무 여유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질을 떠나 양을 채운 글 한 편을 썼으니 이것으로 만족하자!
일상은 구불구불한 곡선도 있겠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무덤덤한 직선도 존재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