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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범 Aug 07. 2017

스쳐야만 내 곳이었던

그는 신림사거리 근처에 살았다. 나는 언제나 사거리 버스 정류장까지 그를 바래다줬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거리는 마치 내 곳처럼 나를 품었다. 그러다 그가 버스에 올라 멀리 흐려지면 사거리의 화려는 곧장 나를 밀어냈다. 그러면 나는 깊은 허무에 빠져 낯선 이들 틈에 끼어 담배를 피워야 했다. 사거리는 그가 있을 때만 나를 인정했다.


사거리는 스침이었다. 그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머물 뿐이었다. 그땐 그 십 분이 간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사거리는 스쳐야만 그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한 달 정도 신림사거리를 내 터 삼아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 눌러앉자 몇 번이고 스쳐 갔던 그 시절의 사거리가 쉼 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의 스침은 단편의 장면으로 쪼개져 있다. 단편의 스침을 모아 장편의 호흡으로 숨구멍에 밀어 넣어 본다. 그러자 장면들은 오히려 물에 찍어낸 듯 흐려진다. 일렁일렁 퍼져나가는 장면을 또렷이 재생하려 쉼 없이 되감는다. 장면이 완전히 흩어져버릴까 두려워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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