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28개월 아들은 언젠가부터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맘마, 엄마, 아빠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못하는 말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언제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고대했는데, 이제는 대화가 되는 수준이다. 특히 가장 귀여울 때는 혼자 책을 보며 말을 할 때이다.
"이거느은~ 호랑이고오, 저거느은~ 냐옹이야아. 너도 우리 집에 갈래?"와 같이 상대방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듯이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을 보면 기가 찰 정도이다. 얼마 전 유튜브 <짠한 형>에 배우 조정석이 출연해서 5살된 딸이 말하는 걸 볼 때마다 와이프와 놀란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딱 그 상황이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최근에는 숫자도 하나둘씩 세기 시작했는데, 우리 부부는 아들이 아무 이유 없이 떼를 쓰면서 어떤 것을 요구할 때 기다리는 방법을 "10초만 기다려줘"하면서 10초를 세며 알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도 "하나아아~ 두우우울~ (건너뛰고) 열~ 땡!" 하면서 따라하다 보니 조금 더 빨리 익혔던 것 같다.
그리고 물건이 놓여 있을 때 항상 몇 개냐고 물어보면서 알려주곤 했는데, 다섯 개가 있든 열 개가 있든 아들의 최대치는 항상 '두 개'였다. 근데 이 '두 개'는 물건을 셀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셀 때도 마찬가지여서 웃기고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와이프와 나는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특별히 식료품을 사지 않아도 둘러보며 구경하고 출출하면 어묵 하나씩 먹곤 한다. 시장에는 배추, 무, 고추 등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어서 책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볼 수 있어 아들한테는 단어 공부가 되는 최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장 상인분은 대부분 어르신들인데, 아들에게는 이 분들이 다 하부(할아버지)고 할미(할머니)이다. 시장의 구조상 양쪽으로 가게가 늘어져 있고 가운데 통행로가 있어 왼쪽 오른쪽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구경을 하게 되는데, 아들에게 제일 잘 보이는 것은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라 다름 아닌 할미다.
"여기도 할미~ 또 할미~ 할미 두우개에~" 하며 혼자 웃으며 걷는 아들을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또 자기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다 보니 크게 이야기해서 주변 상인분들이 다 듣고 쳐다본다. 공교롭게 가게 주인분이 계속해서 여자 어르신이면, 팔을 동그랗게 휘저으며 "할미~~ 많아~~"를 외친다. 그럴 땐 어이가 없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걸 들은 상인분들도 아들의 그런 모습을 너무 귀여워해 주시고, 시식해보라며 손에 쥐어주시려고 한다. 아들과 함께 다니며 느끼는 것은,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분들이 아들에게 시선 집중을 하시고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출산율을 본 유명 교수가 머리를 쥐며 "대한민국 망했어요"를 외치는 형국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니 어르신들이 신기하게 생각할 만하다.
'움벨트(umwelten)'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 인식하는 세계'쯤으로 번역을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내가 보는 세계'를 말한다. 즉 아들은 현재 자기만의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구축 중이고, 하루가 다르게 넓히고 있는 듯하다. 그 세계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재밌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