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아들과 2박 3일 제주도 여행(feat. 부모님)
와이프와 20개월 아들, 그리고 제 부모님까지 2박 3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몇 번 다녀왔는데, 제 부모님과는 여행을 간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저는 부모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여태 비행기 한 번 타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비행기는 한번 타보고 죽어야 되지 않겠냐"는 반협박(?)성 말을 하셨는데요. 저는 계속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속으로 하고 현실이 너무 바빠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비행기를 타는 부모님을 모셔야 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낮잠을 꼭 자야 칭얼대지 않는 20개월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느라 꽤나 진땀을 뺐습니다. 저는 주로 부모님을 보필하고, 와이프는 아들을 케어하는 식으로 분담했는데도요.
연애할 때 와이프랑 단 둘이 제주도를 몇 번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는 제주도라 와이프와 저도 설렜는데요. 막상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설렐 틈이 없었습니다. 지방에서 자차를 끌고 오시는 부모님이 국내선 출발층으로 잘 오시는지, 혹시 헷갈려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웠죠. 또 아들은 산책할 때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나 스티커북에 있는 비행기 스티커만 보던 비행기를 실제로 보더니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비행기라는 말을 아직 못 해서 비행기를 "삐! 삐!"라고 발음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삐'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이죠. 저는 그런 아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삐'는 비행기임을 알려드리며 우리 자리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원래 여행을 갈 때 계획을 짜지 않는 스타일인데 이번 제주도 여행은 철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부모님을 만족시켜야 했고, 동시에 아직 어린 아들이 피곤해하지 않고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코스로요. 가장 크게 걱정했던 부분은 아들의 낮잠이었어요. 평균적으로 낮 12시 정도에 잠들기 시작해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는 낮잠을 푹 자야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들이라서요. 그래서 '여행 도중에 아들의 낮잠을 어떻게 재울까'가 우리 부부의 큰 난제였습니다.
일정이 2박 3일이었지만, 가는 날은 낮 12시 30분 제주 도착이었고 돌아오는 날은 제주에서 오후 1시 30분 비행기여서 꽉 채운 2박 3일은 아니었어요. 짧은 시간에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 했죠. 첫날은 지방에서 운전하며 올라오시느라 피곤하실 듯한 부모님을 위해 관광지 1곳 정도만 갔다가 저녁에는 회를 먹으며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어요. 다행히 아들도 아침잠이 없어서 즐겁게 나설 수 있었죠. 숙소를 제주도 북부 쪽에 잡아서 숙소와 가장 먼 곳인 천지연 폭포를 시작으로 고흐의 정원, 섭지코지, 김녕해수욕장을 구경했어요. 남쪽부터 동쪽-서쪽을 훑고 숙소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되도록 해안도로로 달리며 바다 구경을 실컷 시켜드렸죠. 그 사이사이에 미리 찾아놓은 맛집에 가서 즐기기도 했고요. 천지연 폭포와 고흐의 정원까지 돌아보니 시간이 낮 12시 넘어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들은 졸린지 눈을 비비기 시작하고, 귀를 만지고 횡설수설을 했는데요. 뒤에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고흐의 정원에서 섭지코지까지 이동시간이 좀 되니까 차에서 재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근데, 안 자요.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차를 타니까 오히려 쌩쌩해지고 바깥을 구경하기 바빴는데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최대한 이동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지 않고, 바다에 바짝 붙은 해안도로로 계속 달렸어요. 자꾸 안 잘 거처럼 해서 제가 와이프에게 농담 삼아 도착할 때쯤 잘 것 같다고 농담을 했더니 그게 현실이 돼서 입을 함부로 놀린 벌을 받기도 했는데요. 아들은 정말 도착하기 10분 정도 남기고 잠에 빠졌어요. 그때 차 안 상황은 수능을 하루 앞둔 도서관 분위기였어요. 부모님도 어렵게 잠든 아들이 깰까 봐 마음을 졸이며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창문 밖 풍경만 보셨어요.
섭지코지 주차장에 거의 다다를 때쯤 고민이 시작됐어요. 30분도 못 잔 아들을 깨워서 데리고 갈 것이냐, 아니면 차 안에 남아서 계속 재울 것인가. 결국 저희는 기존 역할 부담했던 대로 수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와이프는 차 안에 남아 아들을 재우고,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섭지코지를 구경하고 오기로요. 차에서 부모님과 조용히 하차한 후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걷는 중에도 차에 있을 와이프와 아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전에 와이프와 단둘이 여행 왔을 때 섭지코지는 못 와봤거든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함께 즐기려고 코스에 넣은 것도 있었는데, 멋진 풍경을 저만 구경한다는 마음이 들어 미안했습니다.
오랜만에 비행기 타고 여행 온 와이프도 여행을 즐기고 싶었을 텐데 그걸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더 고마웠어요. 그래도 일단은 부모님과 여행 온 부분도 있으니 부모님과 함께 걸으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날씨도 한몫했습니다. 꼭대기까지 오르막길이고 계단도 있는데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잘 올라가셨습니다.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바람이 차갑다고 느껴질 때쯤 따듯한 햇살을 쐬며 섭지코지를 다 둘러보니 약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와이프와 아들이 걱정돼서 중간중간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다행히 잘 자고 있다고, 다만 어깨와 목이 결려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을 때는 빨리 서둘러서 내려갈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입구 쪽에 우도 땅콩 호두과자를 팔더라고요. '그래, 이거라도 사가자.'는 마음으로 옛날 아버지가 종이봉투에 담긴 붕어빵을 가슴팍에 품고 귀가하듯 저도 비슷한 모습으로 호두과자를 와이프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먹다가 목마르지 말라고 함께 산 감귤 주스와 함께. 쌩쌩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니 잘 잔 듯해서 와이프에게 물어봤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와이프 품에서 계속 잤고, 와이프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 자세로 있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때 아들이 잠을 못 잤다면 하루종일 칭얼대서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와이프 덕분에 그 뒤 일정은 무사히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