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세준 Nov 01. 2023

눈동자가 찌그러졌다고요?

안과 갔다가 생활 습관 개선 다짐을 하고 왔다

눈동자가 찌그러졌어요.
네? 눈동자가요?


살다살다 눈동자가 찌그러졌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럼 뭐 내 눈동자가 지금 동그랗지 않고 막 그냥 막 꾸깃꾸깃하다는 건가? 안그래도 눈도 동그랗지 않은데 눈동자까지 동그랗지 않다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꽤 오래 전부터 인공눈물을 달고 살았다. 눈이 뻑뻑하고 충혈도 되고 간지러워서 안과를 처음 갔더니 안구 건조증이라고 했다. 그 뒤부터 별다른 관리없이 인공눈물만 습관적으로 넣었기 때문에 인공눈물은 내 필수품 중 하나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멤버인 키가 집에 샴푸 한 번 떨어진 적이 없다는 말에 격한 공감을 했는데, 나도 살면서 인공눈물 한 번 떨어진 적이 없었다. 다 쓸 때쯤 안과를 찾아 최대치를 받아오면 2~3개월은 안과를 가지 않아도 돼서 걱정없다. 


며칠 전에도 인공눈물을 처방받아 구입할 요량으로 안과를 찾았다. 원래 가던 집 근처 안과가 아니라 시간 관계상 회사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 가는 곳이라 궁금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었다. 다행히 손님은 의사가 진찰 보고 있는 사람 1명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1명뿐이었다. 나는 인적 사항을 적고 기다렸다. 의사는 중년 남성으로 꽤나 꼼꼼히 봐주는 스타일인 듯했다. 나는 인공눈물만 처방을 받으면 되서 현재 쓰고 있는 인공눈물 종류가 있는지, 있다면 최대치로 처방해달라고만 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내 순서가 되자 의사가 안쪽에서 직접 내 이름을 호명했다. 원래는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는 걸 많이 봤는데 의사가 직접 부른다는 게 신선했고 친근했다. 의사는 나보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고, 나는 안구 건조증이 있어서 인공눈물을 처방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의사는 장비로 내 눈을 들여다보자며 턱과 이마를 고정시켰다. 사실 속으로는 여태 다녔던 안과와 마찬가지로 깊게 진찰해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닌 안과는 공장처럼 환자를 부르고 잠시 진찰하고 내보내는 게 5분도 안걸렸으니까. 근데 내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뒤집어까고 면봉으로 약을 묻혀 눈꺼풀에 바르고 있는 이 의사는(이제 의사 선생님이라고 해야겠다) 달랐다.


원래 눈동자 주위가 모두 검정색으로 되어 있어야 되는데, 자, 보세요. 다르죠?


의사 선생님은 나보고 거울을 들게 하고 후레쉬를 비추면서 내 눈동자를 자세히 보여줬다. 그렇다. 나는 여태껏 내 눈동자를 스스로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고, 의사도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의사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왼쪽, 오른쪽 눈의 위 옆 아래 모두 회색으로 돼있는 거 보이시죠? 이렇다는 뜻은 눈동자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거고,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는 거예요. 관리를 잘 못하셨네요. 관리를 못한 거예요(진짜 관리 못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위에 있던 다른 조직들이 그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눈동자가 찌그러졌다는 거예요. 검정색으로 동그랗게 돼있어야 되는데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는 눈이 충혈되고 간지러운 이유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주셨다. 사람의 눈알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형을 보여주며, 아주 쉽게. 나는 단박에 이해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쭤봤다.


저... 그럼 어쩌죠?
생활습관 개선이 제일 중요해요. 제일 안좋은 건 스마트폰 가까이 보는 것, 그것도 깜깜한 방에서 침대에 누워서요.


마치 내 퇴근하고 자기 전 모습을 알고 있다는 듯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반사적으로 나는 '네, 의사 선생님 그게 바로 전데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가 진찰 시간은 더 길어졌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시대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눈 건강에 영향을 덜 주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했다. 특히 내 마음에 와닿았던 건 "무의미하게 스마트폰 보지 않기"였다.


사실 어쩌면 스마트폰은 도피처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어색한 상황에서 자주 그랬다. 대화를 하다 소재가 떨어져 침묵이 흐르려고 할 때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리고는 오지도 않은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이미 읽은 카톡을 또 읽거나, 한번도 대화에 참여해보지도 않은 입주민 단체방의 메시지를 정독했다. 또는 읽지도 않는데 기사를 켜서 스크롤을 쭉쭉 내리곤 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대중교통을 기다린 적도 없었다. 긴 버스 줄에 멀뚱멀뚱 서있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뭐라도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게 덜 어색하니까. 내가 그걸 하고 싶어서 한다기 보다는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여태껏 그래왔었다.


두 번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 유튜브나 OTT를 켜는 건 '국룰'이 된지 오래다. 사실 매일 매순간 그렇게 하다보니 더이상 볼 컨텐츠도 없다. 그러다보니 인기급상승 카테고리도 눌러보고, 알고리즘이 안내해주는 영상들도 보려고 하지만 확 끌리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유튜브를 종료하지 못하고 계속 스크롤을 슥슥 내린다. 그러다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판단되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 어플을 켠다. 최신 공개작을 둘러보고, 영화 평론가가 평점 만점을 준 영화들을 모아놓은 작품 목록도 뒤져보지만, 몇 시간 후면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일 그런 일상이 반복되는 역설. 알면서도 하게 되는 스마트폰 중독.


안과를 다녀오고 다짐했다. 

무의미하게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20개월 아들과 캠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