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만에 캠핑
임신 준비, 출산, 육아로 와이프와 나는 유일한 취미인 캠핑을 포기했다. 장비가 다 갖춰져 있는 글램핑을 간 적은 있으나 진정한 캠핑은 내가 직접 텐트를 치는 캠핑이다. 그런데 약 3년을 집 한 구석에 보이지 않게 짱박아둔(?) 캠핑장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캠핑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지막 캠핑 때 비가 왔었나?'부터 '비가 왔으면 비를 맞았을 테고, 그럼 텐트를 잘 말려서 가방에 넣었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 맞은 텐트를 햇빛에 바짝 말리지 않으면 금방 녹이 슬어버려서 장비에 이상이 생긴다는 캠핑 고수들의 충언이 뒤늦게 생각났다. 꼭 비를 맞지 않았더라도 너무 오래 방치해서 자연스럽게 녹이 슬었을까 걱정되었다. 원래는 캠핑장을 예약하기 전에 장비를 먼저 확인했어야 됐는데, 오랜만에 캠핑 뽐뿌가 와서 캠핑장을 예약하고 장비를 확인하는 짓을 저질렀다.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텐트를 비롯한 확인이 필요한 캠핑장비를 모조리 꺼냈다. 그리고 카트에 실어서 텐트를 펼쳐볼 수 있는 공터로 향했다. 이전에는 와이프와 함께 쳤는데 이제는 텐트를 칠 동안 아들을 볼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 혼자 치는 연습도 할 겸 장비 상태를 점검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텐트의 묵직함과 폴대의 차가운 감촉이 캠핑 호르몬을 서서히 일깨웠다. 먼저 텐트를 싹 다 펼치고 구멍 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폴대에 녹슬거나 부러진 곳은 없는지 훑어봤다. 다행히 3년 간 고이 모셔둔 덕분에 장비에 이상은 없었다. 확인 후 혼자 텐트를 쳐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자전거를 오랫동안 안 타다가 간만에 타도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텐트 치기도 거의 자동반사 수준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전 주말부터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캠핑을 떠났다(좋아, 진행시켜!).
부부만 하는 캠핑과 아들까지 함께 하는 캠핑은 여러모로 달랐다. 부부만 하는 캠핑은 그야말로 '고통 뒤 힐링'이었다. 텐트를 치고 짐 정리를 하고 캠핑 장비를 예쁘게 세팅하는 고통만 견딘다면 그 뒤는 달콤한 휴식이다. 캠핑 의자에 가만히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맑은 하늘을 바라봐도 되고,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해도 된다. 또 잠시 누워 낮잠을 자도 된다. 반면, 아들과 하는 캠핑은 정반대다(그렇다고 '고통 뒤 고통'이라고는 안 했다). 앞뒤옆 텐트로 달려가 관심받고 싶어 하는 아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야 되고, 때론 뒷짐을 지고 걷는 아들을 주시해야 한다. 또 아들이 제발 잠시 낮잠을 자줬으면 한다. 그러나 낮잠은커녕 밤잠이라도 잘 자줬으면.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맞으며 아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녁밥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아들의 수면시간을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준비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캠핑의 저녁밥은 단연 고기다. 늘어나는 설거지를 방지하기 위해 프라이팬 하나에 아들이 먹을 고기를 먼저 굽고 우리가 먹을 고기를 구웠다. 원래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정석이지만, 아들이 불나방처럼 불을 보고 달려들 수도 있기에 포기했다. 그리고 불멍을 즐기기 위해 화로대는 최대한 멀리 배치시켜 놓고 불을 피웠다. 아들을 재워놓고 와이프와 둘이 불멍을 조용히 즐기려고 했는데,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일찍 불을 붙였다. 그러다 보니 아직 주위가 어두워지지 않은 상태로 불멍을 즐겼다.
사실 20개월 아들과 캠핑을 온다고 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했다. 그러나 잘 따라와 주는 아들이 대견했다. 낯가리지도 않고 적응하고 뛰어놀며 밥도 잘 먹었다. 밤에 잠도 잘 잤다. 이너텐트 안에서 재우려고 에어매트를 급히 구입했다. 집 침대만큼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잠자리에서 재웠다. 잠자다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방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다가 한 두어 번은 떨어졌다고 했다. 아들과 같이 잔 와이프가, 떨어져서 허우적대며 우는 아들의 모습이 순간 너무 웃겨서, 웃으며 다시 재웠다고 했다.
하룻밤 잘 집을 짓고, 밥을 해 먹고 하는 캠핑을 아들과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다음은 혹한 캠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