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쿵, 쿵, 쿵"
단순히 걷는 것이지만, 그 소리가 마치 망치 두드리듯 요란하다 하여 아파트 입주자들 사이에서 이를 일명 ‘발망치’라고 부른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입주자 단체 메시지방에서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올라오는 주제, 바로 ‘층간소음’이다. 어떤 날은 입주민끼리 다투기도 한다. 아랫집은 위에서 소리가 나니 윗집이라고 생각하지만, 윗집은 아니라며 그렇게 특정해서 뭐라하면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소리는 꼭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는 게 아니라며.
나도 입주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혹시 매트를 까셨나요?”
아이가 있는 입주자들 사이에서 그 유명한 ‘매트 시공’을 했어야 했나. 업체를 통해 집 바닥 전체를 두툼한 매트를 까는 것인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아 '전용 대출상품'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대출도 부담스러워 그보다 저렴한 매트를 온라인을 통해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부족한 것 같아 고민이다.
그러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2살 아들이 집을 돌아다니다 소리가 크게 나서 주의를 주긴 했는데, 그때 시간은 대낮이었다. 아들이 몇 걸음 크게 걸었다고 바로 메시지가 오다니. 늦은 밤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각자 생활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불편을 끼친 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답장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 7시 무렵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들은 강아지처럼 반갑다고 “아빠!”하며 달려온다.
그렇다. 달려온다…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만 속으로는 ‘어… 뛰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 뛰는 소리에 “소음 방지 슬리퍼가 있는데, 혹시 그것도 신으시나요? 확실히 신으면 좋긴 한데….” 하며 아랫집 이웃이 구매 링크를 보내왔다.
순간 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천장에 귀를 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우리도 아들에게 뛰지말라고 주의를 주고 달래도 보고 교육도 하지만, 아직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어떻게 더 한단 말인가. 아들에게 뛰지말라고 하면, “네!” 하고 바로 잊어버리고 뛰는 것을.
그리고 아들을 저녁 8시면 재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퇴근 후 아들을 볼 시간이 약 1시간밖에 되질 않는다. 그래도 싸우기는 싫고 누구나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감정을 누르고 최대한 정중하게 답장을 보냈다.
“아이고, 시끄러우셨군요ㅠㅠ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평일에 어린 아들을 보는 시간이 1시간도 안되네요. 그래서 반갑다고 뛰어와서 소리가 크게 났나 봐요. 아들이 8시면 자러 들어가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릴께요. 그러나 너무 시끄럽거나 하면 말씀해 주세요. 조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아랫집 이웃은 너무 늦은 시간만 아니라면 이해하겠다, 며 오히려 본인이 너무 예민했다며 사과를 했다.
층간소음으로 이웃을 살인한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웃끼리 서로 이야기해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인터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화를 내거나 보복 소음을 일으키거나 관리사무소, 경비실에 민원을 심하게 제기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사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층간소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윗집에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을 ‘당한’ 입장이었다. 정말 늦은 밤(‘늦은’이라는 것도 몇시 이후일까? 어렵다)만 아니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뛰어노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도 아기가 생기고 점차 커가면서 층간소음의 주범이 될까봐 계속해서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사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콘크리트 슬라브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해서 다른 집의 소음이 잘 전달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쉽고 합리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러기엔 많은 비용이 발생되기도 하거니와 바닥을 줄인 만큼 건물의 층수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건설사에서 꺼리는 부분일 것이다. 이는 결국 온전히 입주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값비싼 비용을 내고 집 전체를 매트로 뒤덮는 수밖에 없다. 결국 건설사가 해야 할 일을 입주민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음이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해결, 아니 완화하는 것이 현명할까? 사람은 누구나 소음을 낸다는 자각, 그걸 통한 이해와 배려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요행’에 가깝다.
현재 제도상으로 아파트 등 공공주택의 바닥 두께 기준이 최소 210mm이다. 그러므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은 최소 기준보다 더 두껍게 시공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비용을 일부 보전해주는 유인책을 사용하거나 건설사로 하여금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이미 입주한 세대에게는 매트 시공 비용 일부를 지원!). 그래야만 입주자들이 집에서 ‘살얼음판’ 걷듯이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안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집에서 편안히 걷지도 못한다면, 그게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