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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Feb 22. 2024

한밤중 쥐가 나타났다

내 종아리에

인간과 야생동물의 큰 차이점은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환경에 있는가이다. 야생동물은 적들의 공격을 언제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잠을 잘 때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야 한다. 반대로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집이라는 튼튼한 건물 안에 침실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따로 있다. 하루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인간은 '잠이라도 편하게' 자기 위해 자기 몸에 맞는 비싼 매트리스와 베개를 구입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 침대는 충전기이다. 수면의 질은 다음 날의 컨디션을 결정한다. 얼마나 적절한 시간을 잤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는지는 현대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가끔 외부의 적으로부터 전혀 공격을 받지 않는 침실이 한순간 '귀신의 집'처럼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건 바로 갑자기 나타난 '쥐' 때문이다. 도시 위생 시스템이 발달하기 전에는 어느 공간에서나 쥐가 들끓었다. 쥐는 인간에게 다양한 전염병을 옮기기도 해 꼭 잡아야 하는 동물이었다(오죽하면 2000년대 초 예능에서 '쥐를 잡자' 게임이 전국을 휩쓸었겠는가).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쥐를 잡아오면 포상을 내리기도 했다. 나도 군 생활 시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서 쥐를 여러 번 보기도 했다. 인간이 버린 음식물을 잘 먹었는지 토실토실한 쥐였으나 몸놀림은 날쌔서 잡기란 여간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비슷한 쥐가 우리 집에도 나타났다. 다름 아닌 내 '종아리'에. 그것도 내가 가장 취약한 상태인 수면 상태일 때. 정신이 말짱한 상태에서도 쥐가 나면 사람이 어딘가... 엉성해지고, 몸이 베베 꼬이고, 불편해 보인다. 쥐가 난 곳을 빨리 풀기 위해 몸을 늘리고 줄이고 별 짓을 다하게 된다. 그런데 자고 있는 상태에서 쥐가 나면 어떤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이보다 고통을 잘 보여주는 짤이 있을까.


"으아아악!! 너무 아파아!! 너무 아파아... 흐규흑흙" 


며칠 전 새벽에도 잠을 자던 중 종아리에 쥐가 났다. 곤히 잠을 자던 내가 갑자기 눈을 떴다. 자연스럽게 상체와 하체를 V자로 만들며 무슨 다리가 절단 난 것마냥 두 손으로 쥐가 난 다리를 소중히 받쳤다. 그리곤 포효했다. 아니 울었나? 엄청난 고통 때문에 소리를 질렀지만,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 거의 울다시피 한 듯하다. 다행히 옆에서 자던 와이프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내 모습을 봤으면 처량하기도 했겠지만,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그런데 쥐가 나고 소리 지르며 아파하는 그 상태가 신기하게도 잠결에 모두 이루어진다. 잠을 자다 깬 상태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몸을 V자로 만들며 난리난리쌩난리를 치다가 털썩 다시 눕는다. 이내 뭔가 훌쩍거리며 다시 잠에 든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바닥에 발을 처음 딱 딛는 순간 아직도 쥐의 후유증이 종아리에 남아 있어 깨닫는다. 씻기 위해 욕실로 걸어가며 혼자 웃는다. 새벽에 그랬던 내 모습이 제 3자의 시선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누구도 내 모습을 보질 못해 안도한다.


실제 집이든 어디든 쥐가 나타나면 사람이 미치고 난리 나는 것처럼, 다리에도 쥐가 나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부르는 말이 같은 것인가. 그러나 동물 쥐는 잡을 수라도 있지만, 한밤중 다리에 난 쥐는 잡을 수 없다. 쥐가 극한의 고통을 내게 주고 떠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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