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박사과정 학생인데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신나게 놀았다.
결혼식이라는 핑계로 아주 긴 휴가를 스스로에게 준 셈인데 너무 놀면 소 된다는 우리 옛말처럼 난 소가 된 것만 같다. 제주도에서 만났던 소들처럼 하루 종일 먹고 놀고 쉬고, 걸어 다니기에도 바쁜 일상이었다. 백수도 정말 바쁘다는 남편의 말처럼 공부도 안 하는데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두 달 동안 신나게 쉬고 나면 이젠 좀 공부하고자 할 의지가 생길 줄 알았는데 무너진 일상의 패턴을 회복하려니 너무 어렵다. 같은 학교, 같은 장학금을 받는 내 친구 S 같은 경우에는 실험실에서 하루 8시간을 보내고 (비록 계약서에는 4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수업을 들어서 학점도 채우고, 마지막엔 논문까지 완성해야 졸업이 가능하지만 난 논문만 완성하면 졸업을 할 수 있다. 논문을 써야 하니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악덕한 친구의 교수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럼 200% 노력하라는 말만 했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난 오히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하루를 낭비하기 십상이다.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겼는데 결혼식을 통해 내가 아주 무계획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에는 나의 학위 계획에서의 허점도 하나 둘 발견하게 되었다. 도대체 시간계획은 제대로 짜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 계획대로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벌써 한 학기 늦어진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너무 오래 놀다 보면 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로, 지도 교수님을 피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한국에서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교수님께 연락을 해서 만났을 텐데 아직 제대로 된 이메일도 쓰지 못했다. 왜냐면 두 달 동안 한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동안의 빵꾸를 메우느라 하루 열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있다.
두 번째는, 하루 열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서인지, 내가 무슨 공부를 했었는지도 잊었는지 컴퓨터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집중력도 아주 아주 낮아졌는지 계속 딴짓이 재미있다. 그리고 논문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인풋이 없어서 아웃풋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만 쓸 말이 없다는 건 정말 멍청한 기분이다.
결국 여러 고민 끝에 그동안 놓쳤던 일과를 하나씩 되돌려보려 일기도, 일정표도, 브런치도 다시 쓰기로 했다. 꾸준히 뭐라도 쓰다 보면 내 논문에서도 조금 더 유연하게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천재가 되기보다는 꾸준함으로 내가 깨달을 수 없는 순간순간에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겐 더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일상을 놓지 않고 다시금 경보를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