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겨울은 밤이 길다.
네시만 되어도 어두워지는 의미에서도 긴 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낮에도 구름이 해를 가리는 날이 대부분이라 하루 종일 어두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따뜻한 불빛을 여기저기 키고 밝은 곳으로 모여드는 걸까?)
춥고 어두운 겨울이 계속되면 해가 그립고, 비타민 D 결핍 증세가 나타나는 것만 같다.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나지 않고 기분도 처지고.
그동안 몇 번의 겨울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겨울.
환한 빛이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제외하면 어딜 가든 어두운 분위기가 나를 누르는 기분이 드는 마당에 PMS도 찾아와 내 기분이 더 처지는 이번 주였다. 주말이 왔지만 갑자기 취소된 기차 덕에 테니스 수업에 가지 못했고 내 기분은 더 우울해졌다. 감정의 높낮이가 크기 않은 나라고 생각하지만 호르몬의 영향은 무시하기 어려운가 보다. 우울의 근원을 찾아보아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고, 결국은 생리 전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우중충한 날씨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결국 어두운 긴 겨울에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바로 베이킹.
베이킹은 늘 시작하기 전엔 귀찮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면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인 것 같다.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또 열정이 퐁퐁 샘솟기 시작한다. 며칠이고 할 수 있게 된다. 오븐에 굽기 시작한 빵 냄새는 설레기까지 한다.
마침 오후에 저녁식사에 초대받아서 그때 가져갈 파운드케이크를 굽기로 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쑥을 넣어보았다. 내가 만든 쑥 크럼블 파운드케이크의 레시피.
*크럼블 재료: 박력분 40g, 아몬드 가루 20g, 쑥가루 5g, 설탕 15g, 베이킹파우더 1g를 다 같이 섞은 후 냉장 보관한 버터 50g을 잘게 잘라 함께 섞는다. (너무 뭉치지 않게 많이 치대지 않기). 냉장고에 보관.
*파운드 재료: 버터 (상온) 100g, 설탕 40g, 스테비아 20g, 달걀 2개, 소금 1g, 바닐라 익스트랙 2g, 우유 20ml, 꿀 1t을 섞은 후 박력분 150g, 베이킹파우더 3g, 쑥 파우더 10g을 넣고 잘 섞어 준다.
파운드 재료를 틀에 잘 넣은 후 크럼블을 올려주고 예열해둔 오븐에 170도로 35분 구우면 완성. 만들고 나니 설탕이 크럼블에 좀 더 들어갔으면 더 나았을 것 같았음. 쑥도 더 많으면 더 맛있을 듯.
이렇게 정성껏 만든 쑥 파운드를 굽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내가 만든 빵은 설탕을 마음껏 머금지 못해 항상 중간 정도의 맛밖에는 못 내고, 그래서 손님들의 입맛을 만족시켜주긴 어렵다. 그래도 결과물이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해본다. 자주 해보면 맛도 나아질까?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베이킹도, 마음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