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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와 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고 난 후

고전을 다시 읽다.

나름 문학소녀의 부심을 갖고 자란 나의 어린 시절.

<제인 에어>를 필두로 국민학교 6학년 시절부터 고전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전래동화 100선'에 빠져 낄낄거릴 때 

가슴으로 코웃음을 치며 '니들이 고전을 알아?' 하는 우월한 눈빛으로

우아하게 서양 고전을 겨드랑이에 끼고 살았다.

한참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마르고 닳도록 읽어 내린 다음이라

전집에 없는 그럴싸한 제목의 책들을 집어 들 때마다 '교양 있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더더욱 작가와 제목에 연연하는 독서를 이어갔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나는 어마어마한 고전을 마구마구 읽어제꼈다.

가끔씩 책 내용에는 비상한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모두 유명하고 어려운 고전을 읽었다는 내용이 나왔고,

'나도 한국에 있는 비상한 주인공이다.'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40대에 들어섰다. 

그때의 문학소녀 부심은 여전하지만, 사실 몇몇 기억에 남는 책 말고는 읽었는지 조차 까마득하다. 

계기가 되어 최근에 영맨들의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첫 책이 내가 무려 중학생 때 읽어제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줄거리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지만, 책의 내용은.... 지겨웠다... 는 후기 정도?


젊은 베르테르와 괴테


책을 잃어버려 재구매해야 했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여기가 고전 책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다시 샀다.


오마이....

놀라웠다.

내가 중학생 때 이 책을 읽었다고?

아니다. 

그냥 글자를 눈으로 봤을 뿐이었겠지..


젊은 베르테르의 아름다운 감성이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곱게 묻어있었다.

그의 마음이 즐겁고 기쁠 때면 나타나는 찬란한 자연 묘사들, 어둡고 무거운 마음속에서는 한없이 비약되는 감정들...

그랬다. 그는 젊었다. 그는 통찰력을 지닌 젊은 예술가이며 젊은 철학자였다.

베르테르를 통해 젊은 괴테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친구를 모티브로 쓴 이야기라 했다.

1700년대의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물론 그는 지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성숙한  25세 청년이었다.


자연을 대하는 그 젊은 청년의 자세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훌륭하다.

예술을 사랑하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를 갈망한다.

고매한 지적 수준과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끓어오르는 젊은 피도 넘쳐 오른다. 

물론 그 젊음의 억센 파도를 견뎌내지 못한 채 베르테르는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하지만 

그 또한 젊은 시절의 질풍노도를 달리고 있는 괴테의 셀카가 아닌가?


나는 40대가 되어서 다시 마주한 베르테르를 아니 젊은 괴테를 생각해본다.

책의 첫 장이 들어서기 전 이런 이야기로 시작된다.


가련한 베르테르의 이야기에 관해서 내가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모아서 여기 여러분들 앞에 내어 놓습니다....(중략)... 바로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그대가 운명 때문에 또는 그대 자신의 잘못으로 절친한 친구를 찾지 못한다면 부디 이 조그마한 책을 그대의 친구로 삼아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잊고 있던 친구를 다시 찾게 되었다. 


함께 베르테르의 열정을 느낀 독서모임의 젊은 동생들도 늙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내 멘탈이 아직 생기 있다고 기분이 들뜨기도 했지만 , 어떤 면에서는 좀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20대에는 분명 괴테 지성의 백분의 일만큼도 다다르지 못했고 , 또 그때에는 베르테르를 만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젊은 괴테에게 감사했고, 나에게 그를 만나게 해 준 이 친구들에게도 감사했다.


Estanislao Marco (1873-1954)의 Guitarra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우연치 않게 음악을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기타 연주 음반인데 음악이 너무나 편안하고 아늑하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소개한 아름다운 발하임의 자연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이 보다 더 적합한 음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답고도 편안한 음악들이 문장과 함께 춤을 추었다.

또 격정적인 감정의 기복이 표현되는 부분에서는 끓어오르는 격함을 애써 누그러뜨리려는 주인공의 노력인듯한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음악들이었다. 


이 음반의 작곡가인 에스타니슬라오 마르코는  '알함브라의 궁전'으로 유명한 작곡가 '따레가'Francisco Tarrega(1852-1909)의 제자로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스페인의 미지의 기타 음악 작곡가이다.   연주자인 호르헤 오로스코가 2000년 발렌시아의 벼룩시장에서 마르코의 악보를 발견하여 연주하면서 이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만큼 그의 음악은 매우 친숙하고 아름답다.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 마르코의 음악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 이 두 가지 모두가 세상에 다시없을 아쉬움이 될 뻔했다.  

이 책과 이 음악은 너무나도 공통점 투성이지 않은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조화롭게 느껴지는 음악과 문장의 뛰어난 호흡은 어쩌면 내 감성의 포용력을 넓혀준 젊은 괴테 덕분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음악과 문학의 기막힌 궁합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한번 동시에 감상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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