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냥...

episode 1


테니스의 계절이다.

세계 유수의 메이저 대회가 한창이다. 

나와 신랑이 좋아하는 선수들이 실력을 자랑하고 견주며 각 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다.

어김없이 밤샘을 마다않고 티비앞에서  열광한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항상 경기를 관람하고 난 후면 신랑이 이렇게 말한다. 

"나도 잘 칠수 있는데, 잘 치고 싶다.."

시도나 일단 좀 해보고 나서 얘기하라는 똑같은 대답을 수없이 한다.

어제 밤에도 또 경기후에 똑같은 대화다.


" 아 나도 정현처럼 잘 칠수 있는데...."

왜 일까? 오늘따라 기분이 개운치 않다. 

".....저 선수들 잘쳐서 좋겠다는 얘기는 어쩌면 그들한테 너무 예의없는 말이 아닌가?..."

신랑이 한 번 쳐다본다. 

" '저들은 테니스 잘쳐서 좋겠네''나도 저 정도는 칠수 있는데' 라는 말은 일생을 걸고 직업으로 삼아서 열심히하는 사람들에게 내 취미 생활과 견주면서 은근 프로선수 비하하는 말 아니야?"

" 내 말은 그런뜻이 아니잖아. 오늘 예민하다 너..."

언제부터인지 계속 거슬려왔나보다. 어쩐지 오늘 좀 사이다인데...


episode 2

미사후에 멋지게 오르간 후주를 쳤다. 

그나마 내가 오르가니스트라는 의식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항상 노래 부르기 좋게, 전례에 맞게  '반주'만 하는 사람으로 쭈욱 지내오다 말이다.

아주 가끔 오르가니스트라는 내 소명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년에 한번씩 독주회를 연다.

사비를 털어서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비싼 대관료와 수고로운 억지초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항상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다.

청중에게 지겹지는 않을까?

이 음악들을 어떻게 의미있게 연주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아름답게 들릴까?

길고 긴 고민과 고생 끝에 연주회를 마무리하면 열에 일곱의 반응은 대강 이렇다.

'너무 잘 쳐서 좋겠어요','어떻게 손이랑 발이랑 다 연주를 해요? 신기하네' '내가 그렇게 연주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신기하게 보이려고, 잘난척하려고 준비한 연주가 아니다.

내 음악을 알아주기를,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던 거다.


episode 1+2

어쩌다가 나는 까질한 사람이 되었을까?


다시 어제 밤으로 돌아간다.

내 얘기를 듣고 난 신랑이 잠깐 생각하다가 건조하게 답한다.

"그러네...알았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요"

돌아누웠다.

왜 이렇게 서운한걸까?

내가 좀 너무 까칠했던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래도 서운하다.


갑자기 정신없이 영혼이 다 털린 모습으로 공부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이 공부하던 그때.

누가 하라고 등떠민것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렇게 신들린 사람처럼 집착했을까?

클래식 음악중에서도 마이너 분야라고, 교회에 미친 광신도 아니냐고 매도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힘들었던 기억은 생생한데, 그냥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잘쳐서 좋겠다는 얘기를 할때면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다. 

그렇게 쉽게, 아무렇지않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싫다.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면 신드롬이 된다.

김연아가 나타났을땐 아이스링크가,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을땐 바둑교실이 그렇게 붐이었다.

많은 다수가 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에게 그 분야게 관심을 갖게 해주는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볼일이다. 그런데 이게 꾸준한 관심으로 어떤 계층을 만들어서 유지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붐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냥 사람들은 그 뛰어난것이 부러웠던건가 보다.


나는 그게 너무나 서운하다. 

내가하는 악기인 오르간은 붐이 될 일도 거의 없는 분야이다.

우리 신랑은 나에게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하라고 열심히 부추긴다.

나는 어떨까?


나는 내 악기가 좋다. 오르간이 정말 좋다. 

내가 사랑하는 이 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에 대해 같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

취미가 아니라 평생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다.

그냥 단순히 잘 연주하는걸 보여주려는게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며 평생 살고 싶어서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 생각할수도 없는 이 악기 연주자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나 외롭게도 ,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오르간 음악을 듣는 사람도 없고, 소수의 연주자들은 그냥 한푼이라도 더 벌지 못해서 혹은 그 자리에 연연해 한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신기한 악기, 취미생활이면 충분한..아니 취미로도 애매한 악기일 뿐이다.

예상은 했지만, 견디기로 결심했지만  가끔씩 피부로 느껴지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테니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중적이고 고급스러운 스포츠지만

어제 밤에는 어쩐지 열심히 코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나의 외로움이 비춰졌나보다.

















작가의 이전글 젊은 베르테르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