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다시읽기>를 읽고...
그림을 그린다.
음악을 연주한다.
문학작품을 만든다.
기원전부터 인간이 해왔던 활동에 예술이 있다.
서양사, 서양음악,미술에관심이 있다.
어떤 직업적인 관심이기도 하고, 순수한 호기심이나 지적 허영심일 수도있다.
연초에는 늘 지적 허영심이 굉장한 열정을 뿜어낸다.
<연주와 독서>는해마다 1월이면 넘실거리는 새해 목표의 최고 먹이감이다.
예술에 대한 갈망은 음악, 미술, 문학을 가리지 않는다.
지적 허영심의 주인답게 얄팍한 예술에 대한 정보를 아쉬워하던 차에, 정말우연히, 그것도 새해 계획을 세우고 난 사흘 뒤에 <서양미술다시읽기>라는 따끈따끈한 책이 좋은 기회에 내 손에 들어왔다.
나 같은 지적 허영자는 주류, 트렌드를 싫어한다.
유행하는 음악은 듣고 싶지 않고, 베스트셀러 책은 멀리해야 한다. 유명하고 대중이 찬사를 보내는 그림액자는 우리 집벽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통’,’본질’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그래서 꼭 알아야만 한다고 나름 정해놓은 것은 Histroy이다.
음악을 연주 할 때에는 작곡가가 살던 시기, 작곡된 배경 지식을 알고그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얄팍하게나마 서양미술사를 눈꼽만큼 알고 있다.
서문에서 안내하기로는 시기별 미술작품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해주는 컨텐츠로 구성된다고 한다.
입맛이 쓰윽 다셔진다.
.
.
.
.
책을 다 읽었다.
한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나흘이나 걸렸다.
거만하게도 내가 아는 내용은 패스하겠다는 오만까지 떨었으면서…
미술책이라고 하면 뭐 시기별로 이러이러한 작가가 있고 이러이러한 작품이 있고 이러이러한 화풍이고 ...하다보면 졸며 눈비비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다르고…그랬던 기억이많다.
중요한 작품이나 한번씩 외워두고 어디가서 아는척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언젠가는 파리에 여행가서 미술관 투어 중에 이런 아는척을 남발했던 기억도 ….
그런데 책한권 읽음으로 작품의 의도까지 알게된다니 신이났다.
이 책은 이러한 나의 흑심을 온데간데 없게 만들어버렸다.
목차를 펼쳤을 때도 다른 여타의 미술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용의 구성도 그랬다.
처음부터 재미있게 시작됐다.
빠져들어 읽다가 중간중간 언급되는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스마트패드까지 동원해서 그림을 키웠다 줄였다. 마치 대학 때 미술감상수업에서 교수님이 설명하는 내용에 집중하며 살펴보듯이…
아 이번에는 서양 역사가 나온다.
중세를 거쳐, 계몽주의, 혁명의시기를 거쳐 산업혁명이 나온다.
오 이런…마르크스와 인도네시아화산폭발까지 …
아는척 하려고 억지로 외우며 작품과 작가의 매칭이 헷갈려서 괴로워했던 일이 무색하다.
그저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당시에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작가는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의 코멘트 해 주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인가 세계사책, 예술서, 철학서까지 펼쳐놓고 혼자 역사 속을 여행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서문에서 작가의 의도와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했다는 것을 읽었는데, 이책을 마치고 나니 마치 교수님의 강의록을 훔쳐보며 빠져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서양사를 보면 음악이 딸려온다. 어쩌면이 책을 읽으면서도 시대별, 사조별 음악이 계속 연결지어져서 더 흥미있고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저자의 미술가를 대하는 태도가 역사와 사상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려는 따스한 노력이느껴졌다는 것이 다른 미술책과의 작지만 너무나큰 차이점이다.
어쩌면 이 책은 미학서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다시한번 저자의 약력을 펼쳐보니 미술가이자 미학자이기도 하시네..
특히 나에게 있어서 이 책에 너무나 감사한 것은 나의 음악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대를 거친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고민과 애씀이 느껴지면서 음악가로서의 내 모습과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가끊임없이 고개를 쳐들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서야 완독할 수 있었다.
직업병처럼 모든 것이 음악과 연결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미술, 음악, 문학이 왜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함께 할 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에게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알게 해주었고, 현실과 그리고 인간 내면의 시간과 찰나를 가두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했던 미술가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음악이라는 녀석도 그 공간과 장소를 시간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 애쓰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해 준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미술은 세계사 안에서 역사의 증거로서 존재하다가, 시대정신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점점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주체로 열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새삼스러울까?
음악도 문학도 다르지 않다.
예술은 그러한 것이다.
한가지..이 책을 읽고 새로 깨닫게 된 사실은 인간도 예술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
시상식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는듯한 나의 이 기분은 도대체 뭔가..
나도 예술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기분을 공감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더 있기를 ..
그리고 그러한 사람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