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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Sep 04. 2023

20점에 대한 정신승리


현재 운영중인 코딩클래스에서 가장 오랫동안 수강 중인 학생 두 명이 있다.

둘 다 어찌나 말이 없는지 19개월 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사적인 대화 횟수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말수는 없지만 실력은 있어서 어떤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하면 하는 족족 이해를 한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뭔가 편하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게도 하는 그런 친구들이 이제 중3이 되어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간다.


"양서고에 갈꺼 같아요"

"양일고에 갈꺼 같아요"


양평군의 중학생들은 내신에 맞는 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다고 한다. 내신으로 줄을 세워 서열화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 같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아무래도 양서고는 서울,경기권에서도 오겠다고 하는 곳이니까요. 이곳이 1순위에요.


양평군의 중학교에서 내신 최하180~200사이에 들어야 갈수있어요."


"그 다음이 양일고, 다음이 양평고일 거에요."

"나머지 고등학교는 잘 모르겠어요. 신경 안 써요. 

들은 바로는 용문고의 경우, 딱 7명만 수시전형으로 좋은 대학 보낼 계획만 가지고 있다던데요. 나머지는 알아서 하란 식이라고...뜬소문이지만 그렇데요."


코딩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초등학교에 머물러 있던 초5결군에 대한 내 생각의 범위를 중,고등학교로 확장시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원평가 싸인 받아오기'


엊그제, 결군의 학교 알림장 앱이 '띠링'하고 울렸다. 평소와 다르게 눈이 가는 이유는 얼마전, 두 친구들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결아, 단원평가 싸인받아오라던데 챙겨왔어?"


학교에서 돌아온 결군을 꼬옥 안아주고 느닷없이 물어보았다. 내 머리속은 온통 '양평군의 서열식 고등학교입학' 에 꽂혀있었다. 


"앗, 깜빡했어요. 학교에 놓고 왔어요"

"수학 단원평가 결과는 어때?"


결군은 당당하게 말했다.


"20점이요. 10개 중에 2개 맞았어요. 실수를 좀 많이 했어요."


"실수? 결아, 실수도 실력이야."


아마 일부러 놓고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이 늘어갈 나이다. 양서고, 양일고, 양평고, 나머지......등등.....우리 결군의 고등학교는 메아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지하층 어딘가에 있을것만 같았다.


좋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어두운 생각들로 가득찬 머리에서 밝은 말이 나올리가 없다. 어떤 학생의 몇 마디에내 생각은 '주유소 앞 흔들이 풍선'처럼 이리저리 휘둘렸다.



                                            @ 우리 마을의 가을 노을, fields of gold



양평군으로 귀촌한 이유를 찾자면 밝힐 수 없는 구질구질한 이유에서부터  포장가득 감성 듬뿍담은 멋드러진 이유까지 다양하다.


'타인으로부터의 영향을 쉽게 받는 것' 


이건 나에게 중요한 이유였다. 타인의 학력, 경제력, 지적능력, 예술적인 면, 등에 대한 부러움을 스펀지처럼 내면 깊숙히 받아들였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며 타인들의 외적인 부분외에 속사정은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나를 함부로 낮추었다.


아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교하는 삶' 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귀촌을 택한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귀촌 후,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흔들림들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하지 않던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나와 비슷한 세대의 '경제력상승 및 부러움의 요소들' 을 티나지 않는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정도는 덜 하다.나는 언제쯤이면 타인의 '잘 됨'을 '부러움'이나 '비교'가 아닌 그저 그냥 '축하'라는 마음으로 전해 줄 수 있을까.


                                                              @ 책을 좋아하는 결군



                                                 @ 할머니 뚜뚜와 할머니 여름이, by 결군



아빠랑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틈만 나면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라고 말해주는 결군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는가 말이다.


아빠의 '비교'에서 비롯된 질타섞인 말들은

과연 결군을 위한 것일까.


초5시절 나는 어떠했는가.

시뻘건 색연필로 박박 휘갈겨 쓴 '30점' 시험지를 

꼬깃꼬깃 가방속에 욱여넣은 채 집에 들어가

책가방 휙 던지고 야구, 축구하러 나갔다. 

시험지 점수는 신경 쓸 꺼리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도 보통성적, 

고등학교때도 보통성적, 

대학교도 지방대를 나왔다.


결군이 보내는 초5의 시간들은 내 초5의 시간들보다 더 잘 보내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계속 사랑받으며 중,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보내면 삶의 좋은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아빠의 '비교'로 인해'어줍지 않은 훈육을 한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20점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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