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Sep 05. 2023

결, 너의 생각은 어때?

엄마, 아빠는 신이 하지 말라고 했던 걸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아?

최고의 오로라 스팟 중 하나인 스웨덴 키루나 @2015 스웨덴


지구가 아프기는한가 보다. 


계절마다 겪는 당연한 일들이었지만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잦아진다. 6월이 오기도 전에 폭염이 오더니 3일 내내 적지 않은 비를 뿌려댔다. 정원가꾸기에 진심인 아내는 비로 녹아내리는 꽃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항암 중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정원에서 무언가를 했다는데, 나는 정원의 달라진 점을 도무지 알아 챌 수가 없다. 아내는 옆에서 '쟤를 옮겼고, 가지를 쳤고, 데드헤딩을 했고...등등' 많은 것들을 했다는 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우주', '시간' 을 논할 때면 말들이 띠를 이뤄 아내의 왼쪽귀에서 오른쪽귀로 그대로 통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 아니던가. 


정원을 보며 행복해 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암' 이라는 상황에 맞닥뜨린 아내의 태도는 '이 사람이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 을 잊게 만들정도로 씩씩하고 의연하다. 


다섯살의 결군 @2015 네덜란드


 나의 경우, 직장인 시절 겪었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잉태한 원형탈모로 인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두부처럼 연한 멘탈로 그 답 없는 상황을 해결해 버리기 위해 밤잠 설치며 뒤척인 나날들을 셀 수가 없었다. 아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나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크기로 쓰나미처럼 몰아쳤을 것이 분명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상황을 대하는 태도 뿐인 것을 현명한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미래를 예견하고 귀촌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결정이 지금의 상황에서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의 귀촌이 그렇다. 정원의 꽃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다. 어제 마지막 6차항암을 마쳤다는 작금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내는 그 시간들을 정원과 함께 보내고 있다. 뒷마당에서 앉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빡빡이 머리로 꽃 향기를 맡는 그녀의 뒷모습은 편안해보인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탈바꿈하는 데 큰 울림이 되었던 그 말, 변화의 태풍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태풍의 눈으로 이끌어 주었던 그 말, 나는 책에서 배웠던 반면,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상황을 바꾸려 얘 쓰지 말고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그 말은, 행하기 어렵지만, 진리에 가깝다.


짤쯔봄머 @2015 네덜란드


"아빠, 갈꺼죠?"


어울리지 않는 계절에, 하늘 어딘가에서 구멍이 뚫린 듯 주책없는 비가 내리던 얼마 전, 읽을 책이 없어 뒹굴뒹굴하던 결군이 말했다. 밖에 거센 비가 몰아쳐도 그곳은 반드시 가야만 할 것처럼 결군이 말했다. 대신도서관, 여주도서관, 양평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분류하고 커다란 이케아 쇼핑백에 차곡차곡 쌓아서 출발했다. 


"인간이 신에게 딱 한가지만 물어볼 기회가 생겼답니다."

"인간은 고심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하죠."

"신이시여~ 살아가면서 하지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도서관 가는 길,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에 시끄러워, 볼륨을 크게 올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지금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말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노년이 되어 벌어놓은 돈을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 써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 것"


위트레흐트 @2015 네덜란드


 나는 그게 궁금했었다. 풍족한 미래를 위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미래를 위하자니 지금을 덜 위하게 되고, 지금을 위하자니 미래를 덜 위하게 되는 거 아닌가. 특별한 자산증식 능력이 있지 않는 한,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이 위축되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나와 같은 보통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궁금했었다.


 7년 전 '대책없는 퇴사' 이후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거릴 때, 나는 내가 선택해야 할 미래의 크기와 벌어야 할 돈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었다. 


'인간의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는 거창한 미래도 커다란 경제적 부도 필요하지 않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폐지줍는 쪽방노인'과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의 두려움에 떨지 않을 만큼의 노력정도로도 충분히 '존엄' 하게 살 수 있다. 그저 타인이 좆아가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존엄'하게 지금과 미래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타인의 부가 부러울 때면 '인간의 존엄성' 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고는 한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신의 일화'는 '존엄'하게 살 수 있을만큼만의 노력만 기울이며 지금과 미래를 살아가야겠다는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결아, 너의 생각은 어때?"

"엄마 아빠는 신이 하지 말라고 했던 걸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 같아?"

"그런 것 같은데요? 아빠는 힘들어했던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도 늘어났고, 돈도 벌잖아요?"

"엄마는 정원가꾸는 일을 좋아하구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걸 '쏘서'라고 부르는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