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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Dec 19. 2023

우리가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을까

결군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다


 전날에 비해 기온이 무려 13도나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너무 청명한 어제였다. 거실창으로 보이는 고래산이 미세먼지로 거의 보이지 않았던 전날이었지만, 겨울바람이 세차게 부는 산의 능선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그런 날이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해는 더 기울어져 거실 깊숙히 빛이 들어온다. 아이보리색 장판위로 앞집에서 돌리는 보일러 연통에서 뿜어져나오는 뜨거운 김의 아지랭이 그림자가 일렁인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 깊게 들어오는 햇빛을 쬐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상의 작은 아름다움들을 눈에 담으며 느낄 수 있어 좋은 날들이다.


                                                                  photo by @Skiphaha


 결군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다. 우리의 집을 짓고 마당있는 집에서 살아보겠다며 귀촌했을 때, 결군이 유치원이었으니 적지않은 시간이 흐른것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졸업까지 줄곧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기분은 어떨까. 결군의 학교는 한 학년에 한반, 한반의 정원은 10명이 넘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졸업까지 10명도 안되는 친구들이 줄곧 같은 반에서 자라온 것이다. 이 친구들의 졸업식은 어떠할까. 결군은 졸업이야기를 하면 하지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결군에게 졸업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미래이다. 이 친구들의 초등 마지막 시절을 사진작가 스킵하하(#skiphaha) 가 담아주었다. 마을 혹은 학교 행사가 있을때마다 찰나의 행복을 기록해주는 고마운 사진작가이다. http://www.skiphaha.com



"우리가 이곳에서 평생살 수 있을까?"


 결이고운가를 짓고 나서 아내에게 물어봤었다. 투자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음이 분명한데, 전 재산이 들어간 집이었고 우리가 이곳 양평에서의 경제적활동이 자산증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확률이 크기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결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옮겨도 되지 않을까? 집을 다시 짓거나 해서...우리의 습성을 고려해 봤을때.."


 당시에 아내는 이런 생각이었다. 우리의 집을 아무리 공을 들여 짓는다고 해도 한곳에서 평생을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것 같다. 뭐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주변의 공기를 바꾸어 준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어 깊게 패인 일상의 길목을 벗어나 다른 길로 향할 힘을 얻을 수 있어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내가 사는 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의 그 생각은 이런 이유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의 그 생각이 어떻든 간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건축비는 거의 2배로 상승하였고 알고있는 모든 부동산들에 대해 우리는 쳐다볼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준 작금의 시대에 감사해야 하는건가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결이고운가라는 집과 마당, 삶에 만족을 하며 살고 있다. 어차피 못 떠나는 거 자위하는 거 아니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믿던 말던 우리는 그러하다. 7년 전의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야할 때가 왔고 우리는 이러한 답을 등떠밀려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7년전에는 없던 바람이 하나 생겼는데, 양평읍 주변에 네모 반듯한 자그마한 땅 한덩어리 갖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다. 


                                                                     photo by @Skiphaha



 우리 사회가 건설한 커다란 학력의 벽을 허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사회에서 누군가의 첫인상은 그 사람의 출신대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학력의 벽 저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된다는 사실 또한 그러하다. 그러한 세상을 경험했던 벽을 넘지 못했던 부모로서 입시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양평에서 코딩클래스를 진행하다보면 선행을 하고 있는 초중고생을 적지 않게 마주한다. 코딩수업의 경우, 자신의 선택으로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고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꽉 막힌 채로 고민하다가 작은 힌트로 물꼬가 트여 파이썬으로 해결책을 찾아냈을 때 학생들의 표정은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친구들이 수업이 끝난 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교습소를 나서면 마음이 좋지 않다. 모두가 선행학습을 위한 영수학원으로 향하는 뒷모습들이다.


선행집단 속에서 중학생 결군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입시의 벽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엄마,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부모로서 마음을 다 잡았다가도 코딩수업에서의 학생들을 보면 흔들리고는 한다.


 사실 상, 아내와 나는 결군의 중학교생활을 마주하는 태도를 결정하기는 했다. 처음의 생각과 변함없이 그냥 지켜봐주기로 한 것이다. 그 바탕은 결군을 믿는 것이고 지금까지 겪어온 결군의 모든 것 으로부터이다. 우리의 할일은 결군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지켜봐주고 힘들어하면 어깨를 슬며시 내어주는 부모가 되는 것뿐이다. 그래, 그렇게 가보자. 예비 중학생 결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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