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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그렇게 쓰자

한치 앞도 모르는 삶에서

by 우노


"이 근처 농지 평당 20만원정도에 살 수 있어요"

"지금 돈이 없어도 6000만원 대출받아서 300평 정도 농지를 사서 농사를 지으면 직불금 받아서 그걸로 이자 내면되니까요"

"아, 그래요??"


얼마전 마을 분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들었던 내가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오! 그렇게 땅을 사는구나! 우리 정말 300평만 사볼까?"

"대출받아서 땅을 사자고?"


아내와 난 땅을 갖고 싶었다. 물론 양평에 집을 짓기 위해 대지를 구입하기는 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땅이 아닌 땅을 갖고 싶었다. 귀촌 9년차에 접어들다보니 도시의 아파트에 대한 욕심, 시세차익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사그러들었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바로 땅. 내가 살고 있는 집 부근에 땅을 갖고 싶다는 욕심.


"아니, 우리는, 그러니까, 너의 부모님집안, 그리고 우리 부모님 집안에는, 우리들에게 물려줄 땅 한평이 없으시냐?"


아내와 나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고는 했다. 원망아닌 원망, 장난인듯 아닌듯 혹은 진지한 듯한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고는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홀로서기를 함에 있어서 부모님에게 기대려는 생각은 단 1도 없었다. 그랬는데 양평에 와서 이런말을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양평으로의 귀촌 9년차에 접어들며 생긴 땅 욕심때문이다. 양평은 땅덩어리가 넓어 어디를 가든 차로 20분이상은 기본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눈에 들어오는 건 다 땅이다.


"와 저기 땅주인은 누굴까? 저렇게 좋은 자리에 상가하나 짓고 살면 좋겠다"

"와 저 좋은 자리에 하우스 만들어서 취미로 꽃농사하면 좋겠다."


양평의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눈에 보이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수 밖에. 어쩌면 땅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얼마 전, 성여사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큰 형이 오늘 죽었대"


서울 상봉에서 끈질기게 치킨호프 집을 하며 집안을 건사했던 사촌형이었다.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관계로 친하지도 않고 연락도 거의 안하고 지내던 형이었다. 2년전인가 이 형으로부터 뜬금없이 전화가 왔었다.


"병수야, 너 TV에 나온거 봤다 야, 건축탐구봤어. 그리고 오래전에 노홍철이랑 나온것도 보고 sbs스페셜에 나온것도 다봤어"

"집 이쁘게 잘 지었더라, 나 남양주 아파트로 이사왔어, 근데 아파트가 싫다, 나도 남양주나 양평에 집짓고 살며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즐기고 싶다. 너무 일만했어. 이제 그만하고 놀면서 살라고"


생애 처음으로 나에게 전화를 한 형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참 많은 말들을 했다. 20년넘게 장사하며 임대들어갔던 그 상가를 사버리고 자리를 잡아갔다. 이 전화통화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고, 1년 후 서울형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나아졌다 재발을 반복하며 결국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다.

성여사 전화를 받자마자 서울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사촌형의 아들은 눈이 벌겋게 달궈진 채로 내 손을 잡으며 아빠가 너무 불쌍하다고 울며 말했다.


"이제 오토바이 타고 놀러다닌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 살거라고 악착같이 버텼는데...가셨어요....어떻게요...울아빠 불쌍해서...고생만 하다 가서..."


죽으면 다 소용없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그래 죽으면 뭔 소용이냐.

하루하루 빈틈없이 살며 적립해놓은 돈을 나중에 쓴다고? 한치앞도 모르는 삶에서?

하루 하루 빈틈없이 살던 빈틈있이 살던 상관없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되 적립해 놓은 돈은 적당히 써가며 사는게 맞는것 같다. 노후를 살아가는 비용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미디어에서 떠는 노후생활비용 월 최소 얼마 라는 것들은 평균의 함정이다.

아내와 나의 삶을 이끌어주는 말 중에 하나인 '지금이 미래다' 가 더욱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나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내가 말했다.


"땅? 우리가 지금 대출없이 살 돈이 있으면 괜찮지만, 대출은 아니지 않나?"

"대출받으면 그 대출갚느라 우리가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이 부족할 거잖아"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건 현재로선 가장 중요해, 얼마있다가 독립할 결군과 함께하는 지금의 시간들. 이 시간들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거든"

"지금 이 시간들, 잠시 후면 사라질 이 시간들을 즐기는데, 돈을 쓰는게 맞는거 같아."

"나중은 그 때가서 생각하자. 나중에 무게를 싣고 살며 지금을 소외시하다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하루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잖아"

"결군이 성인이 되기까지 앞으로 5년이야, 우리는 이 시간들을 꽉꽉 채우며 살자. 그럴러면 당장 돈이 필요하거든."

"훗날을 위한 그 딴 땅사는데, 지금 그 돈 쓰지말고, 지금을 위한 시간들에 그 돈 쓰자"

"모이는 족족 결군과 여행다니고, 콘서트 보러가고, 공연보러다니며 쓰자"

"올해 돈 잘 모아서 겨울에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캠핑카 여행가는거야. 그렇게 쓰자"


그래, 우리 그렇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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