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
대화를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게 대화를 적절하게 마무리하는 것과 더불어 대화의 주제를 제안하고 이를 받아내고 다음 주제로 큰 굴곡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대화는 지겹고 피곤하고 언제 끝나나 기다려지는 반면, 어떤 대화는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처럼 십수년전부터 말을 나누어왔던 인연인듯 재미있고 편안하다.
불편한 대화는 남을 험담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 내용이 지배적일 경우가 많다. 어떤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혹은 자신이 불평하는 것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동조하기를 바라며 대화를 끌어가는 이도 있다. 누가봐도 가식적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 상황을 직시하는 일 또한 너무나도 피곤하다.
세상사가 좋은 일만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는 즐거운 일들, 좋은 사람들, 미래지향적인, 진솔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기를 원한다. 혹자는 '넌 동화속에 살길 원하니?' 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대화도 습관이다. 몇 마디 대화를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불평, 불만, 험담을 배제하려는 노력은 대화의 주제를 좀 더 밝은 곳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내가 하는 말, 상대방이 뱉으려는 말의 방향을 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내가 대화의 상대를 고를 수 있음을 생각한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사람을 나름 철저하게 가려 만난다.(친구가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기준이 바로 첫 대화이다.
그 사람과의 지속가능한 관계의 유무는 바로 첫 대화에서 결정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에 내가 얼마만큼 고개를 끄덕였는가, 나의 말에 상대방은 얼마만큼 공감하였는지에 대한 것으로 말이다. 공감의 정도가 높은 대화는 상대방의 말에서 나의 말로 이어지는 부분도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편안하다. 이는 대화의 피로도와도 직결될 것이다. 대화의 상대를 골라가며 대화를 나누는 나는,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 친구도 거의 없다. 하지만 난 신기하게도 불편하거나 외롭지 않다.
앞으로도 나는 불편한 대화 열번보다 편안한 대화 한번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루하루 내 주위에 사람이 점점 없어지더라도 말이다. 괜찮다. 나에게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