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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가진 것으로 좋아 질 수 있다

'이게 행복이구나' 라고 감탄하는 순간들은 이미 가진 것들로부터 느낀다

by 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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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군은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와 같은 중학교를 갔고 같은 반이 되었으며 사이좋게 반장과 부반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도 친구가 반장으로 나오면 부반장으로 나갔었던 결군이다.


"형님, 결이 퀼트반인데요"


결군의 중학교에서 농구동아리 강사를 맡게된 우리마을 사진가에게서 카톡이 왔다. 혼자 한참을 키득키득 웃었다. 결군은 인기 많은 동아리의 경쟁률에 밀려 가위, 바위, 보를 하게 되었고 퀼트반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가게 되었다며 씩씩거린다. 새로 사귄 친구, '송사리'는 현대무용반에 들어갔다는 말에 한참을 웃었다. '송사리'라는 친구는 덩치가 크고 유도를 오랫동안 배운 친구라고 한다.


우리동네는 하루에 버스가 4번 다녀간다. 근처에 중학교가 2곳 있고 한 학교는 그 4번의 버스가 다니는 경로에 위치했지만 나머지 한 곳은 그렇지 않다. 그 나머지 한 곳이 결군의 중학교이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약간의 우려가 앞 섰던 이유였다. 중학생의 등하교를 매일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오전 시간이 자유로운 내가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불규칙한 하교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우리들은 결군의 중학생활을 맞이했다. 작년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결이고운가는 올 초부터 좋은 소식들이 많이 찾아왔고 또 한번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결군의 중학교에 '스쿨버스'가 생겼다는 소식이다. 결군의 입학과 동시에, 스쿨버스를 운영한다니... 우리는 대박이라며 우리의 올해 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기뻐했다.


양평으로 귀촌하기 전,


'행복하게 자알~ 사는 건 뭔가'

'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자알~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양평으로 귀촌해서 9년차인 지금도 자알~ 사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고 한해 한해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 한톨만큼씩 알아가고 있다.


행복하게 자알 사는것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어떻게든 간에 돈부터 밑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를 깔고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답없는 물음으로 고민은 애매모호하게 흐지부지 되고는 했다. 돈을 밑에 까는 동안의 시간은 자알 사는 것도, 행복도 잊어도 되는가, 잠시 잊고 다 깔고나서 행복하게 자알 살면 되는 것인가 말이다. 아, 귀찮고 복잡했고 어려웠다.


'적당히 벌어 아주 잘 살자' 라는 결이고운가의 모토는 이렇게 대충 만들어졌다.


양평에 오기 전, 내 인생에 새 자동차 한번 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자동차를 살 만큼의 돈은 통장에 충분치 않았다. 그렇게 대출과 함께 새차를 사버렸다. 행복했다. 새차라니. 맨날 중고차만 타고 다니던 내가 새차라니. 나의 새차를 바라보던 타인의 시선을 즐겼다. 일주일에 한번씩 손세차를 했다. 세차를 하고 번뜩이는 광을 내는 차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딱 3개월이었다. 손세차는 주유소에서 5만원 주유하면 해주는 1천원 자동세차로 바뀌었고 새차 냄새나던 실내는 먼지와 쓰레기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원해서 얻어도 그것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은 고작 3개월이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의 기제가 새로운 것을 얻는 것으로부터였다면 세기는 강렬하지만 그 시간은 짧다. 돈을 얼마만큼 벌고나면 이거하고 저거하면서 행복할 것 같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새차를 사고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의 행복이 과연 행복이었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감정의 기제가 이미 가진 것으로부터였다면 세기는 잔잔하지만 그 시간은 길다. 이미 가진 것에서 느끼는 행복은 가늘고 길며 깊다. 이게 행복이구나 라고 감탄하는 순간들은 이미 가진 것들로부터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목표점을 위해 쉴새없이 달려가며 지나치는 풍경을 보지 못한채 결승점을 골인하며 느끼는 순간의 강렬한 행복보다는 지금있는 집에서 지금있는 사람들과 지금의 순간을 공유하고 즐기는 것이 좋다.


결승점에 골인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지금 있는 집이 좋고

지금하는 일도 좋으며

지금 곁에 있는 아내와

지금 중학생이 된 결군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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