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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협력 직업인 Apr 01. 2024

신좌섭 교수님의 부고를 듣고

인생에 있어 어른을 만나기는 참 어렵다지만

나의 경우 운이 좋게도 늘 앞이 막막할 때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한번쯤 돌이켜보고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게하는 어른들을 그래도 만나왔던 것 같다.

그 중 한 분이 바로 신좌섭 교수님이고, 오늘 부고 소식을 접하였다.

몇 년 전 암이 한 차례 발병하셨었는데, 아마도 연속적으로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죽음이 있을까, 정말 큰 어른이 돌아가신 것 같아 슬프고 아쉽다.      


신좌섭 교수님은 나를 빛내기 위한 사업, 소속된 기관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시지 않고 정말 연수생들과 연수생들이 속한 국가를 위해 조용히, 그 자리에서, 수십년간 힘쓰셨다.

기초의학을 개도국에도 가르쳐야 한다는 의지로 여러 관계자들을 설득했었고, 일방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퍼실리테이팅 워크숍을 통해 연수생들이 스스로의 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갖게 도와주셨다. 교수님께서 “당신의 나라가 어떤 국가가 되기를 바라나요?”, “당신이 온 국가의 의료시스템은 어떤가요?”,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세가지 질문을 던지실때면 연수생들은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곤 했다.


신좌섭 교수님은 때로는 잘못된 방식으로 개발협력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그 특유의 따스함으로 그들의 입장을 바꿔내곤 하셨다. 얼굴 한번 찌뿌리지 않았지만, 옳은 방향으로 옳은 일을 하게끔 만드셨던 분이셨던 것 같다. 부드럽지만 정말 강인한 분이셨다.      


이 곳으로 파견을 오기 전에도, 또 다른 국가로 파견을 가기로 한 직장 동료를 함께 불러 종종 뵙던 와인집에서 여러 격려 말씀을 해주셨다. 중남미는 역사상 참여형으로 주민들과 할 수 있는게 많으니, 참여형 개발협력을 꼭 해보라던 교수님의 말씀. 오랜만에 먹은 와인으로 화장실에서 어처구니없게 잠시 쓰러진(?) 나의 맥을 짚어주시며 의학적으로 이제 괜찮으니 자리에 앉으라고, 침착하게 물도 가져다주시며 농담을 건네주시던 따듯한 분. 한마디로 정말 점잖으시지만, 유머러스함을 끝까지 잃지 않으셨던 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혜화역 자택으로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걸어가셨던 그 뒷모습이 떠오르지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료서비스와 의사는 공공재임을 끝까지 말씀하신 교수님. 세상을 고치는 대의(大醫)셨던 교수님, 그 곳에서는 아드님과 해후하시기를 기도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vBBXWo1m1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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