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는 "형식이 곧 주제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대학 다니던 시절 내 입에서 제일 많이 나왔던 단어 중 하나가 진정성이었다.
그냥 벤치에 앉아서 진정성 이라는 낱말 하나로 몇시간을 친구들과 토론했던지.
그때는 “사람이 진정성이 있어야지! 형식같은 건 부차적인거야!”라고 어찌나 아는척 하며 단언했던지.
그러나 진정성만 가졌던 첫사랑에 실패하고 느꼈던 건,
내 마음이 진심이든 말든 상대방은 받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한 마음이야 말로, 냅다 나 진심이니 너 받아라가 아닌 가장 정교하게 설계해서 줘야 하는 것이구나, 그래야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구나 싶었다.
개발협력을 하며 너무 속 터놓고 개발협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고 싶어서, NGO 활동가 모임에 종종 갔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소속 때문이겠지만)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개발협력을 공공기관이라는 틀 안에서, 그 형식 안에서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는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베이킹을 하며 더 깨닫는다.
마들렌이나 휘낭시에는 그 마들렌 틀, 휘낭시에 틀을 활용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게 마들렌인지 휘낭시엔지 모른다. 마들렌 반죽을 휘낭시에에 넣고 구우면 사람들은 그걸 휘낭시에라고 인식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틀로 그 반죽을 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단 걸 베이킹을 하며 처절히 느낀다.
비슷비슷하다고 해서, 같은게 전혀 아니다.
반죽의 맛을 극대화해준다고 평가받는 베이킹 틀일수록 더 비싸고 더 성능이 좋다. 진정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나를 어떤 틀에 담아 내 진정성을 타인에게 내보일 것인지에 대해 현실 인식이 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