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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을쌓자 May 05. 2016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생긴 일

[인도여행 1]

누군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답할 수 있다. 


2년 전의 나. 

두 해 전 씩씩한 여행자였던 내가 그립다고. 


그 해 여름에 나는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간 인도 북부와 중부를 여행했다. 퇴사하기 석 달 전부터 인도행 e-티켓을 끊고서 지갑에 쏙 넣고 다녔다.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등짝을 발로 차고 싶거나 전화선을 타고 들리는 유들유들한 헛소리에 대꾸해야 할 때마다(그러니까 매일매일!), 그 티켓을 보며 진한 힐링 타임을 가졌다. 그게 꽤 효과가 좋았다. 


그때 나는 사내 부서이동으로 갑자기 낯설고 생소한 공간에 내던져진 참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은 기사를 쓰는 일이었다. 워드 창에 톡톡톡, 글을 써넣을 때만큼은 즐거워서 쉽지 않은 사회생활을 나름대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엑셀! 하루아침에 나는 '엑셀도 못 다루는 열등한 회사원'으로 거듭났다. 눈물도 났다. 엑셀의 수많은 네모 칸과 자꾸 불어나는  숫자에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워드라는 그 새하얀 캔버스 같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가슴 깊이 깨달았다. 회사라는 이 안온한 동그라미를 지킬까, 아니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서 한번 동그라미 밖 넓디넓은 세상으로 나가볼까. 두 마음의 격렬한 충동질 사이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비밀의 요새 같았던 곳. 북인도 라다크 누브라밸리 뚜르뚝 마을



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해? 

이직도, 결혼도 아니면 무얼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긴 여행을 하고도 싶고, 사회생활 10주년을 기념해 제가 저에게 안식년을 주려고요”라는 나의 대답은 반대로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몇몇은 그 말을 아예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몰래(!) 이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모양이라고 단정 짓는 눈치였다. 아, 진심으로, 간절하게 나도 그러고 싶었다. 온 우주의 기운이 팡야 팡야,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한데 생산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밥벌이 대책은 없는 상태였다. 퇴사 결정은, 나름 경력이 10년인데 설마 밥을 굶을까, 하는 타고난 낙관으로 저지른 일이었다(꿀맛 같은 자유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경험해보기 전에 어찌 알았으랴!). 꾸역꾸역 살던 일상을 리셋하고 싶은 나로선 도무지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여행, 사회생활 10년 차를 맞아 스스로 주는 선물, 그렇게 나 홀로 무작정 인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수도 뉴델리의 빠하르간지 한복판.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로 불리운다



여행지를 인도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여러 번 인도를 몇 달간 여행했던 지인의 그 달콤했던 말. “언니, 인도는 도시를 옮길 때마다 다른 나라에 간 것 같아. 진짜 인크레더블 인디아야!” 한 달간 최소 비용으로 최대 여행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나라, 물가는 싸고 거대한 자연과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가 나를 날마다 새롭게 채워줄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인도 같았다.   


인도를 떠올리자 수저나 포크 대신에 손으로 밥을 먹는 것, 거리에 개똥과 소똥이 즐비한 풍경, 실컷 점잔을 빼다가도 뜬금없이 뮤지컬로 장르가 바뀌는 인도영화 특유의 소란과 혼란, 그럼에도 늘 즐거워 보이는 인도인들의 미소가 내 안에서 휘몰아쳤다. 인도 여성들이 여전히 인권 무법지대에 살고 있으며, 여행자 사건사고가 많다는 얘기도 익히 들었던 터였다.



인도영화 <세 얼간이>의 엔딩 장소이자  일명 '하늘 호수'라 불리는 곳, 북인도 라다크 판공초



하지만 이미 나는 인도라는, 그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하고도 복합적인 매혹에 마음을 뺏긴 상태였다. 게다가 인도는 땅덩이가 넓잖아? 인도의 면적은 세계에서 12번째로 넓고(한국의 32.9배), 인구수는 세계 2위다. 여자 혼자 다니기엔 치안이 좋지 않고 여행자로서 수많은 변수를 만날 수밖에 없는 나라지만, 알려진 여행지로만 살살, 그곳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다니자는 생각으로 일단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인도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앞다투어 걱정을 산더미처럼 해주었다. “인도는 위험하다니까 조심, 또 조심해!”라는 말을 거짓말 조금 보태 백 번은 들었던 것 같다. 어떤 회사 동료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하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는 바람에, 나중에는 내가 먼저 “조심해서 여행할게”라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도에 갔다 온 지인들은 인도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며 인도를 예찬하는 데, 인도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위험천만한 나라로 낙인찍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즐겁고 유쾌하게만 느껴졌다.  



“대리님, 타지마할을 실제로 보겠네요. 부러워요.” 



이것이 인도 여행에 대해 회사에서 유일하게 접한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 말을 할 때 후배의 눈동자가 한 순간, 정말 부러움으로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뜻밖이었다. 그녀는 일주일 간 신혼여행을 앞둔 예비 신부답게 한창 예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항상 업무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우수사원이기도 해서 가슴속에 여행자라는 로망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후배의 예언대로 다녀 왔다. 인도 아그라의 남쪽 타지마할



“에이,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간다면서 혼자 가는 타지마할이 부럽긴!” 

“앞으로 저한테는 길게 여행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 담담한 말투 속에 뭐랄까, 인생의 행로를 견고하게 정해버린 사람의 체념 같은 것이 묻어났다.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나는, 여행 후 바로 백수가 될 내 미래에 대해 너스레를 떨고 말았다. 


어느 책에서 그랬더라? 서른의 여자는 결혼을 택하거나 아니면 홀로서기를 위한 여행을 한다고. 결혼하고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커플도 물론 많다. 하지만 대개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나 아내 노릇, 사회생활, 육아라는 트라이앵글 속에서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멀리 밀어 두고 살게 된다. 남들처럼 일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보통 사람들이 그 ‘보통’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속으로 무얼 포기하고 사는지, 본인밖에는 모를 것이다. 타지마할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어 했던 후배 역시, 결혼을 결정하면서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하지 않았을까? 흔히들 하는 그 말, '평범하게 살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의 뜻을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상념을 안고 인도 여행을 위한 배낭을 꾸렸다.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로 백패커가 되는 건 실로 오랜만이라 가슴 한 구석이 찌릿찌릿했다. 38리터짜리 새빨간 배낭을 바라보면서 설레는 마음에 잠 못 이루던 밤을 뒤로하고, 드디어 3개월을 조몰락거렸던  e-티켓을 사용할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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