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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Sep 28. 2016

생각이라는 독

데스크탑 바탕화면 한 구석에 놓인 ‘집필’ 폴더를 드디어 열어봤다. 무지 큰맘을 먹어야 했다. 별 뜻 없이 집필이라고 이름 붙인 폴더를 다시 클릭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지루한 내적 갈등에 대해선 적지 않겠다. 이미 충분히 지루하니까. 


지구에서 달랑 나 혼자 보는 폴더인데도 몇 달이나 끈질기게 회피하고 방치해 왔다니 스스로도 놀랄 일이었다. 지지리 궁상도 수준급이구나, 하고 이상한 감탄까지 해버렸다. 역시 이름이나 제목은 잘 짓고 봐야 해. 매사 치열하지 못하고 굼뜬 자신을 탓하기 싫어서 나는, 괜한 폴더명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  


집필의 사전적 의미는 ‘직접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폴더명에는 죄가 없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집필이라고 하면 왠지 ‘작가가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는 말의 줄임말처럼 거창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손끝에 커다란 바윗돌이 달린 것만 같다. 뜻하지 않게 선택의 궁지에 몰린다. 이렇게 압박이 심해 감당하기 어렵다면 슬쩍 폴더를 지워버리면 그만일 텐데, 나는 이럴 때면 습관처럼 나 몰라라 해버리고 만다. 왜 번번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몸을 쓰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봤는데, 결국 습관을 반복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여간 집필을 둘러싼 착잡한 감정은 내던져 버리고, 가볍고 단순한 목표를 정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 나는 무엇을 쓰려고 하는 거지? 


만약 내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면 진작 이야기가 치밀어 올라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또 평생 읽은 시집이 채 10권도 안 되니 시인은 그림자 흉내도 못 낼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단 쓴다면 지금 이 글처럼, 삶의 비루함에 대한 더 비루한 넋두리, 생각의 파편들, 영 쓸모는 없는 것들의 리스트가 되지 않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래서 요즘의 내 목표는 ‘넋두리를 쓰자‘다. 넋두리건, 몸에서 독소를 빼내려는 분풀이건 간에 무언가를 쓸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테면 미치광이 전쟁광들은 진짜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비로소 생존의 희열을 맛본다나.      


다시 넋두리를 쓰려는 이유로 돌아가면, 쓰지 않고서는 이토록 남아도는 시간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있다. 쓰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글을 쓰는 편이 훨씬 시간이 빨리 간다. 글쓰기와 약간은 친분이 있다고 믿었던 나의 나이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시간이 약삭빠르게 도망친다. 시간이 남아돈다는 건 실은 거짓말이다. 나한테만 시간이 착하게 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바쁜 일이 없어도 삼십대 중반의 시간은 뭉텅뭉텅 베어나가듯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잡지와 웹진 등에 기사를 써왔다. 하지만 나처럼 무른 사람이 어떻게든 악착같이 글만 써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리 없다. 그저 이래라저래라 위에서 시키는 일을 착실히 해내는 아랫사람이 될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에, 제때 마감만 하면 비교적 서로 터치할 일이 적은, 말하자면 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인 편집부에 그럭저럭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참 요령 없는 타입인 것 치고는 용케 지금껏 먹고는 살아 왔는데, 내가 쓴 기사들이 세상에 어떤 쓸모라도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다시 마음이 착잡해진다. 우리 동네 시장통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매일 파는 반찬, 순대, 떡 같은 것들은 누군가의 끼니가 되고, 5천 원짜리 냉장고 바지는 누군가의 시원한 여름나기에 일조했을 텐데, 반면에 내가 작성했던 많은 기사들은? 이런 허무한 기분의 이면에는 아마 회사원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지 못했다는 자각도 깔려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건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이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어느 편지에 아래와 같이 썼듯이 말이다.  


아, 제길. 아무렴 어때요.
생각이란 독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창조는 줄어들 뿐입니다



이제 문제의 폴더명은 ‘집필’에서 ‘글자’로 바뀌었다.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는 무색무취의 이름을 붙여 봤는데 효과가 꽤 괜찮다. 폴더 이름이 글자라니 어째 좀 우습긴 해도, 전과는 달리 부담 없이 클릭을 남발하고 있다. 역시 이름이나 제목은 잘 짓고 봐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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