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라는 말
큰 일을 겪고 그 아픔을 잘 견디고 있는 나를 보던 한 친구가 말했다.
"현주, 너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고 왠지 어깨가 으쓱 올라갔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단단한'이라는 수식어가 진짜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더 단단해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상황에 크게 요동하지 않고, 내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사실 그 전만 해도 나는 걱정도 겁도 상상이상으로 많던 쫄보였다. 생기지 않을 일을 굳이 상상하며 두려워하고 벌벌 떨던 사람, 출장지에서 혼자 잘 때면 늘 불을 켜놓고 자야 할 정도로 겁쟁이었던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다행히 지방/해외 출장이 잦아지면서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졌고 언젠가부터는 어려움 없이 불을 끄고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일 밤 침대 위에 혼자 누워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어젯밤, 씻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건 결국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맞서 더 단단해지고 강인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건사고를 통과하며 전에 없던 무언가를 갖게 되는.
이것이 어젯밤 갑자기 내가 정의 내린 삶이라는 영화의 감상평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사고 덕분이기도 한데 작년 연말에 엄마의 무릎에 금이 간 것을 시작으로 막내 삼촌과 주변 사람들의 암 전이, 동생의 뇌하수체 종양 재발까지 텍스트로만 봐도 무시무시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동시에 삶의 한 켠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에 억울하게 쥐어터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계속되는 시련들로 마음이 금방 폐허가 되었다가도 또 금방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러 교회에 가고, 기도 끝에 평강을 되찾아 다시 또 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결국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몫이라면 전에 없던 강하고 담대한 내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좋게 생각하면 이런 게 삶의 매력일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변했으니까.
얼마 전 친한 동생과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듯 보였던 동생의 남자친구는 내가 떠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누나는 엄청 단단해 보여.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단단해졌나 보다. (사실 별 생각이 없이 살아서 그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예전에는 먼 미래로만 보였던 일들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것 같다. 친한 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미리부터 겁먹지는 말아야지. 오늘 나의 부모님은 무척이나 건강하시고 우리는 서로를 축복하고 중보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