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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09. 2024

밀도 있게 일하는 법

밀도 있게 일한 날은 퇴근길 기분부터 다르다


패션업계에 꽤나 오래 있다가 금융업, 심지어 보험회사 디지털마케팅팀으로 이직해 모두를 놀라게 한 나. 어느덧 지금 회사에서 일한 지도 2년이 훌쩍 넘었고 내년 3월이면 3년을 꽉 채운 어엿한(?) 금융업 종사자가 된다.


얼마 전 회사 게시판에 복무규정이라는 게 올라왔다. 평소 게시판을 그렇게 유심히 보지는 않는데 옷차림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얼른 클릭했다. 그곳에 분명하게 '금융인에 걸맞은 옷차림으로 근무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나는 그 쉬운 문장을 몇 번이고 고쳐 읽으며 내가 여전히 패션회사에 다니는 사람처럼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셔츠에 청바지, 나시에 청바지...


사실 금융회사와 패션회사는 사내 분위기나 직원들의 옷차림, 일하는 방식과 태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등 그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업무가 돌아가는 사이클 역시 엄청난 차이가 있기에 가끔 '내가 사계절 + 스팟성 아이템을 마케팅하느라 한시도 안 바쁠 때가 없는 패션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디가 더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더 많은 규제 속에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금융회사에서 밀도 있게 일한다는 게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규제를 피해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를 정식으로 밟으며 밀도 있게 일하려면, 스스로 일을 찾아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벌써 2년 넘게 일했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이다.


아직도 지금 회사에 처음 입사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있는 노트북으로는 인터넷이 안된다고 말해주는 옆자리 동료의 얼굴, 너무 충격적이라 그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아 그냥 지금 도망칠까.' 했던 순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금융회사에는 '망분리'라는 게 있다는 것을. 다행히 며칠 후 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을 따로 받기는 했지만 두 개의 노트북으로 '내부망'과 '외부망'을 나눠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일의 밀도에 꽤나 많은 영향을 주곤 한다. 외부에서 온 메일은 따로 '내부메일로 받기'를 클릭해야만 들어온다는 것도 여전히 신기한 사실이다.  (물론 '내부망' PC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마케터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구글 프로그램 - 구글 스프레드시트/슬라이드/캘린더/드라이브 - 들을 하나도 쓸 수 없어서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3개의 모니터와 2개의 노트북으로 내부망과 외부망 사이를 오가며 치열하게 일하다 보면 당연히 나의 몰입감과 집중력도 분리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 멀티태스킹을 많이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글을 보고 절망했는데 요즘 현대인 중에 멀티태스킹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튼 일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내가 하는 노력 몇 가지는 이렇다.


첫째, 머릿속으로 시간표를 그려두고 그 시간표를 따라 일한다.

둘째,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빨리 한다.

셋째, 딴짓의 시간도 허용한다.


이렇게 보니 정말 별 게 없다.


첫째, 머릿속으로 시간표를 그려두고 그 시간표를 따라 일한다.

출근하고 자리에 앉으면 그날 꼭 해야 하는 일들이 뭔지를 생각한다. 그때그때 떠올라서 쳐내는 일들도 있지만 크게는 꼭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핀다. 때로는 전날 퇴근 전에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모니터에 붙여둔다. 그러면 출근하자마자 내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정말 데드라인이 코앞인 상황이 아니라면 -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미리미리 해두는 편이다 - 매일 아침 출근 직후에는 롱블랙, 폴인, 각종 뉴스레터를 먼저 읽고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한다. 롱블랙과 폴인에는 너무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각종 뉴스레터는 굳이 내가 네이버에 들어가지 않아도 요즘 어떤 회사가 잘 되는지 어떤 브랜드가 뜨는지 혹은 그 반대의 뉴스까지도 알려준다.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나 신조어 등도 매일 메일만 열면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진 세상인가!


*트렌드어워드, 롱블랙, 뉴스럴, 투고리스트, 트렌드라이트 모두 다 강추!



둘째,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빨리 한다.

얼마 전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된 지인이 나의 포트폴리오를 봤다면서, 빠르게 일한다고 쓰여있는 게 인상적이었단 말을 했다. 나의 강점 중 하나로 '빠른 속도'를 든 건데 그만큼 다른 강점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빨리 일하는 게 정말 내 강점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옆자리 동료가 내게 '벌써 다 했어요?'라고 물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괜히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특히 미팅 Recap 같은 건 미팅 직후에 바로 공유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정말 몰입해서 빠르게 정리한다. 그리고 긴 시간 천천히 만들어야 하는 프레젠테이션 작업이 아니라면 시작하고 1-2시간 안에 초안은 무조건 완성하는 편인데 사실 그러고 나서 다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지 초안은 정말 스케치하듯 빠르게 써 내려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 보도자료 초안도 현업에서 먼저 써서 홍보팀에 수정을 요청해야 하기에 보도자료 같은 것도 몰입해서 빠르게 써 내려가는 편이다.


스마트폰 없이는 30분도 버티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는 집중력의 지속시간이 점점 짧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일도 집중력 있게 하지 않으면 늘어지기 마련이고 금방 끝낼 수 있는 것도 며칠씩 붙잡고 있다 보면 오히려 더 완성도가 떨어진다. 내용은 엉성해지고 중간중간 빈틈도 생긴다. 그렇기에 빨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가 내 바로 옆에 와서 어깨를 툭툭 치기 전까지는 정말 몰입해서 빨리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셋째, 딴짓의 시간도 허용한다.

집중력 있게 할 일을 마쳤다면? 당연히 잠깐의 딴짓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맛집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고, 퇴근 후의 그 열심이 결코 내 본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직무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요즘 가게는 어떤 인테리어, 어떤 메뉴, 어떤 가격, 어떤 접객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있는지 보고 그 과정 가운데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분명 내 일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기에 재미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회사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지하에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를 한-두 바퀴 걷는다. 가끔은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억지로 숨이 차게 하고 매점에 가서 10분 만에 불닭볶음면을 들이켜기도 한다.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나 좀 전에 있었던 타 팀 동료와의 신경전에서 얻은 상흔을 씻어내기 위해. 그런 딴짓들이 모여 나의 일을 더 잘, 오래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죄책감보다는 사명감으로 휴식 혹은 딴짓의 시간을 허용한다.



밀도 있게 일한 날은 퇴근길 기분부터가 다르다. 퇴근 후에 새롭게 시작될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일하는 시간의 밀도는 중요하다.


어제는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봤다. 꽤나 오래 관람을 시도(?)했다가 뒤늦게서야 보게 됐는데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는 아주 평범하고 단조롭다. 하지만 히라야마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가 설명한 것처럼 그의 삶에는 리듬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리드미컬하게 살려면 내가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계속해서 감각을 건드려야 하는 것 같다. 그는 매일 아침 하늘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코모레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매일밤 자기 전에는 책을 읽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져서 슬펐다. 나는 매일밤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드니까. 그래서 어제 다시금 다짐한 게 있다면, 책 읽자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방에 책이 한 권 들어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엔 반드시 책을 읽으리라. 책 한 장을 읽는 집중력마저도 사라진 시대이자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책 읽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렇듯 일의 밀도를 채우기 위한 노력은 (회사) 바깥에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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