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하는유리 Mar 31. 2020

내가 자라는 곳, 주방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시 두 편의 시적 공간은 모두 주방이다.


시 하나, 황인찬의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 둘,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두 시 안에 서있는 나는 그 내부의 시간과 공간을 채운 부드러운 쌀 냄새먹먹한 허탈감을 함께 느낀다. 찌개를 덥히고 반찬을 내놓은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주방 안에선 날 섰던 감정이 사그라들고, 불처럼 뜨거웠던 순간들도 차분히 식는다. 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곳, 내 삶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또 앞으로도 제일 큰 배경일 주방은 언제나 내가 꿈꾸는 미래 집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나는 주방에 애착이 많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작은 것들이 - 인도 동료에게서 소개받아온 소량의 향신료 '힝', 시엄마가 놀러 왔다가 매운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냉장고 가득 채워두고 간 매운 고추 하바네로, 그리고 더울 여름을 위해 소분해 미리 얼려둔 바나나 - 어느 서랍에 그리고 어떤 용기 안에 들어있는지, 나는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그저 밥 하고 먹는 그 장소가 내게는 보물 찾기를 하는 마법과 모험이 일어나는 신비의 성이다.


돈 없고 언어 능력도 없어서 예산에 겨우 맞는 월세방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했던 우리의 첫 보금자리는 주방 때문에 계약했다. 주방 뒤쪽으로 크게 난 창문과 거실의 창문이 서로 모서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었고 나는 그 집을 처음 봤을 때 '아, 여기다' 했다. 게다가 그 모서리를 끼고 있던 공간은 야외였다. 작게 난 텃밭에 꽃과 주인이 심어놨다던 (너무 맛없어서 먹을 수는 없었지만) 딸기가 넝쿨져 있었고, 미안할 정도로 휑한 뒷마당이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밖과, 자연 한 모퉁이와 연결되어 있는 그 주방이 너무 좋았다.

뒷마당에 자주 놀러 왔던 이웃집 고양이들도 참 그립다

처음 가졌던 주방이었던 만큼 들여왔던 식기들과 주방 도구들 중 많은 부분을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케아 제품들로 채워야 했다. 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나는 그 안을 나만의 색으로 채웠다. 델프트 주말 벼룩시장에서 사 왔던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샐러드 접시, 암스테르담 가장 큰 중고시장에서 싼 값에 쟁여온 차 주전자 세트, 그리고 시할머니가 만드신 도자기에 채운 이름 모를 식물들까지 모두 주방보다 내 마음에 먼저 한 자리를 차지한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데려 온 많은 아이들을 내 머릿속에 그렸던 '제자리'에 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 주인이 직접 만들어 설치했다던 요상한 모양의 선반들을 떼어다 버려야 했고, 주방 벽 중앙에 철심까지 박아서 설치했던 전자레인지 거치대도 집주인과 실랑이 끝에 제거했다. 남편은 우리 집도 아닌데 월세집 주방을 왜 그렇게 공을 들여서 모든 걸 바꾸려 하는지 처음엔 내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다 해 놓고 보면 너도 뭔지 알 거야'라는 내 어깃장에 속는 척하며 새 선반이며 오븐까지 다 손수 설치해주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졌던 내 첫 주방

그 집에 오래 살지는 못했다. 햇수로 두 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우리는 독일로 이사를 왔다. 어떻게 보면 돈을 버렸다고도 할 수 있고 헛된 일에 시간을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 기억에 가장 애틋한 내 첫 주방에 쏟은 우리의 모든 노력이 나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두 사람이 쉽게 지나다닐 수도 없는 그 작은 복도식 주방 안에서 우리 둘이 천 번이 넘는 밥을 지어먹으며 이제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지었기 때문에.


독일에 온 뒤 6개월간 잠시 머물렀던 꼭대기층 집 주방 안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었다. 가구도 식기도 모두 남의 것이었고 우리는 그저 시간을 채운 뒤 나가야 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어떻게 서든 내 색을 채워 넣으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항상 남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조금은 불편했다. 조심성이 없어서 잘 덤벙거리는 나는 컵 하나, 간장 종지 하나 개수까지 맞춰서 남겨 그대로 '보존'해서 살아야 했던 그 주방이 어색했다.


어느 오후 햇살이 드리치던 주방 한편

그런데도 그 주방에 애착이 가는 건 바로 내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영상은 찍어 본 적도 없거니와 카메라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내가 무턱대고 그 주방에서 요리법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명도, 그에 대한 내 지식도 열악했던 그 주방 안에서 나는 내적 갈등을 많이 겪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보다 내가 정말 '유튜버'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그 이름을 내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도마와 냄비가 언제나처럼 나를 다독여주었고, 모든 게 낯설었던 그 주방에서 나는 성장했다.


이사를 가기 전 마지막 날, 잠시 머무른 주방임에도 조금씩 들여놓았던 내 살림살이를 이사 박스 안에 차곡차곡 담으며 못내 아쉬웠던 건 주방 밖으로 지는 해의 고운 색이었다. 분홍색이었다 파란색이었다 보라색이었다를 반복하며 내려앉는 저물녘의 해가 보이는 주방에 튼 창문가에 서서 나는 여러 번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차가운 늦겨울 바람이 내 마음에도 들어앉았다.

이사 가기 전 날 주방에서 바라본 하늘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스무 곳이 넘는 곳을 보고 나서야 겨우 계약한 곳이다. 수많은 곳을 보고서도 다 거절했던 이유는 역시 주방이었다. 그 중 우리가 보았던 한 집은 심지어 냉장고까지 어떻게 구했는지 찬장부터 모든 게 다 보라색이었다. 월세가 우리 기준에 맞기도 했고 오랜 집 찾기에 지쳤었기에 남편은 그냥 이 집으로 계약하자 했다. 나는 정말 꼭 맞는 완벽한 집을 곧 찾을 거라고 완강히 버텼다. 그러면서도 사실 속으로 걱정을 했다. 내게 맞는 주방을 찾으려다가 아예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될지도 몰랐기에.


그 보라색 주방을 거절하고 난 다음날 기적처럼 집 계약을 했다. 저녁 여섯 시 반 약속으로 본 집이었고, 우리가 마지막 후보자인 게 뻔해서 천진난만하게 기대를 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고배를 마신 후였다. 가격도 위치도 완벽해서 그냥 미련없게 둘러나 보자 하고 들어간 집 가장 안쪽에 놓인 주방을 보았을 때 나는 그만 울 뻔했다. 수 없이 봐왔던 주방들 중 처음으로 그 작디작은 공간 안에 우리를 그릴 수 있어서였다. 정말 오래되고 못생긴 주방을 보며 감탄하는 나를 집주인이 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인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월세 계약서 위에 내 이름을 굽이쳐 쓴 깊은 펜 자국을 따라 새 나라, 새 집에 드디어 나를 심는 기분이었다.


지금 사는 집을 처음 본 날 마주했던 주방
쌓아 놓은 당근이 너무 예뻤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주방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헐값을 주고 20년이 넘은 오래된 찬장과 오븐을 전 거주자들로부터 사고 몇 달을 쓰면서 우리는 새 주방을 들일 날만 기다렸다. 그 날을 고대하며 선반을 직접 만들기 위해 목재를 사다 자르고, 사포질 하고, 깊은 고동색이 나도록 색을 입혀서 주방 벽에 설치했다.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그 주방을 설치한 날 우리 집은 정말 '우리 집'이 되었다.

(주방을 바꾼 후 내 채널에 공개한 영상)


지금의 내 주방은 내 쌍둥이 같다. 내 안에 있는 작고 소소한 모습을 빚어 담아낸 듯한 이 공간에 있으면 나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된다. 우리 부부를 위한 한 끼 식사를 매일 지어내는 이 곳이 내겐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양파를 썰며 울고, 반죽을 치대며 웃으면서 오롯이 혼자서 하루를 다 살아낸 나를 쓰다듬는 사이에 나는 자라난다. 앞으로 우리가 또 얼마나 많은 주방을 가지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집에 있던, 어떤 모양을 했건 그 나를 닮은 공간은 항상 내 마음 한가운데에 있을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