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라는 이름의 사랑
남의 살이 내 살이 되어야 행복한 걸까?
12시간을 넘게 타고 온 비행에 녹초가 된 몸을 집에 들이자마자 앉은 곳은 식탁 의자다. 식탁 위에 빈틈없이 올려진 반찬들은 그동안 집밥을 못해 먹인 엄마의 안쓰러움으로 가득 찼다. 따끈따끈한 백미밥에 종류별로 나온 김치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감자볶음, 각종 나물들 사이를 비집고 식탁 중앙을 차지한 건 바로 불고기. 국물을 자작하게 했다며 밥 비벼먹으라고 하는 엄마의 미소에 나는 차마 "엄마, 나 고기 안 먹잖아."라고 말할 수 없었다. 불고기 곁에 놓인 나물 반찬에 밥을 먹으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채식을 하며 단 한 번도 내면의 갈등은 없었는데. 고기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놓인 엄마의 사랑을 외면하는 내가 자랑스럽다기보다 못마땅했다.
날이 맑은 오후 열심히 올라 도착한 관악산 정상에서 아빠는 내게 저녁은 무엇을 먹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두부가 먹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지만 일 년 만에 모여 앉아 함께 가족과 먹는 자리에서 두부는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고기가 빠지면 동생이 섭섭해했고, 나는 오랜만에 함께 먹는 저녁 자리에서 섭섭한 동생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저녁 메뉴는 샤부샤부가 되었다. 채소가 잔뜩 쌓인 접시와 얇게 썰어 동그랗게 말아진 소고기 접시를 사이에 두고 나는 채식을 한다는 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일인지 생생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가족의 사랑 사이에서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그렇다고 해서 채식을 못 한건 아니었다. 배려해준 친구들 덕에 비건 식당에서 만찬을 먹기도 하고 아침엔 두유와 밤고구마를 먹으며 행복했다. 절대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매 끼니를 먹어야 하는 인간이다 보니 그때마다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가 일이었다. 내 집과 내 주방에선 나의 통제권으로 나의 선택으로 재료를 고르고 요리 방법을 택할 수 있었는데 모든 자율권이 이 주의 기간 동안 일시 중지되었다. 내가 해온 대로 살 수 없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했다. 고작 몇 년간 나가 있었을 뿐인데 한국에 두고 간 나와 새로운 곳에 정착한 나의 자아는 너무도 달랐다. 하긴, 고기가 너무 좋아 어릴 때 꿈이 해장국집 며느리가 되겠다던 아이가 채식 요리법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으니 나 자신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내게 고기는 이제 '남의 살'이 되었다. 내 살이나 남의 살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그 살들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 온지 꽤 되었다. 하지만 평생 고기를 먹어왔고 어떤 맹목적 믿음도 거부하는 내게 채식은 기호의 문제이지 단답형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식단은 항상 사지선다형이다.
1) 당당하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
2) 조심스럽게 고기를 먹지 않고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3) 모든 이에게 말하되 부디 나를 신경 써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고기를 먹지 않는다.
4) 위의 모든 선택지가 불가능 한 상황에 놓이면 때에 따라 결정.
여태껏 내 대부분의 식단은 2번과 3번의 사이에 놓여있었다. 4번을 선택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한국 방문 동안 4번에 체크를 여러 번 해야 했다.
채식을 고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생각했다. 왜 남의 살이 식탁 위에 오르는 게 식사의 즐거움과 사랑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건강하길 바라고,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건 고기였다. 기력이 없을 땐 소고기를, 목이 칼칼할 땐 돼지고기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게 이유였다. 엄마는 겨울철 건조해진 내 피부에 좋다며 해산물 파티를 해줬고, 해외에서 사는게 힘들지 않냐고 맛있는 것 먹자고 만난 엄마의 친구 분과 함께한 식사에도 역시 고기가 빠질 수 없었다. 멀리서 지내는데 건강해야지, 잘 먹어야지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마음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찜 위에 아른거렸다.
그런데 나는 고기를 끊고 더 건강해졌다. 정확하게는 동물성 식품을 모두 끊고 난 후 더 그랬다. 생각이 더 또렷해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잠을 더 잘 잤다. 피로한 일도 적어졌고 병치레도 크게 없이 약도 없이 몇 년간 체력이 더 강해졌다. 내가 스스로 겪은 그런 모든 경험들을 다만 식탁에서 늘어놓을 수 없었다. 식사시간은 내 몸을 보충시키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내 이야기로 괜히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사랑이 곳곳에 피어나는 단란한 식탁 위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독일에 돌아오고 난 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다시 펴고 그가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던 장면을 읽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사지선다형 보기들의 수를 조금 줄여서 내년 '식단 고사'의 난이도를 대폭 낮추기로. 마음을 먹고 돌아보니 앞에 다가올 복잡한 예시들에 겁이 났다. 그렇게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의심을 반복했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와 동료들과 먹는 점심식사 시간에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아예 채식을 해 볼 거라고 얘기했다. 물론 내가 채식을 주로 한다는 걸 알았지만 동료들은 내 결정의 이유를 궁금해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종교적? 혹은 유행을 따르기 위해?
나는 그저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 결정했다고 했다. 채식을 하면 행복하다. 누군가의 살을 먹기 위해 세상에 살고 있던 어떤 생명체에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평온함이 나를 따뜻하게 했고, 그 충만감이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걸 지난 몇 년간 조금씩 바꿔온 내 채식 식단이 가르쳐 주었다. 새해 목표를 세우는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연말 나는 내 머릿속 한 곳에 크게 사인펜으로 적어 넣는다: "채식하기 -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