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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Mar 22. 2020

고기 이야기해서 미안... 혹시 듣기 거북해?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세 번째 질문

독일 요리 중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인 슈니첼 (Schnitzel)이 닭고기로 만들어졌나 아니면 돼지고기로 만들어졌나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해야 고기에 양념을 잘 베이게 할 수 있는지로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니까 돼지고기를 이렇게 팡팡 쳐서 얇게 저민 다음에 소금 간을 하는 거야.”

“돼지고기 하니까 코리안 바비큐 생각난다 - 양념이 진짜 환상적인데”

“맞아, 그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간장 넣고 또 뭐 들어가?” 


양파, 마늘, 대파 등을 손질해 넣고 키위나 배 같이 부드럽고 달큼한 과일을 갈아서 단맛을 내는 게 한국 바비큐 양념의 비법이라고 말을 막 하려는데, 친구의 얼굴이 금세 화들짝 놀란 상이 되었다. 


“아, 미안해 너 채식하는 거 잠시 까먹었어. 고기 이야기해서 미안… 혹시 듣기 거북해?” 


이상하게도 잘 저민 고기를 익히는 치익치익-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돼지의 살 덩이를 익히는 상상보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명치를 막은 그 질문이 나는 더 거북했다. 채식을 하는 나는 더 이상 고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걸까? 




평생 고기를 먹어왔고, 고기를 즐겨 먹었던 나는 그 맛이 싫은 게 아니다. 그 고기 뒤에 숨겨진 고통들이른 죽음들이 싫어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전 세계에 다양한 채식인들이 4억 명에 다다른다. 그들 중 물론 고기가 역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은 비건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기에 대한 주제로 한참을 떠든 적이 있었다. 그녀는 고기 자체가 싫다고 했다. 살점에 들러붙은 비계, 뼈 사이 연골들, 핏줄과 근육이 선명하게 보이는 모든 게 싫어서 고기가 그리운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에 완전 채식을 하지 않았기에 사실 그녀의 묘사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 맛이 싫을 수 있을까,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믿었다. 


축산업계의 모진 행악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채식을 하는 날이 더 많아지면서 나는 점차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고 맛있는 음식이라기보다 남의 살점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하루가 지나 식은 고기에서 나는 그 비릿한, 죽은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못 참을 정도로 힘들어졌다.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토록 고기가 내게 음식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된것이 새로웠다. 채식의 길에 천천히 들어서면서 또한 가장 신기한 건 고기가 그립지 않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만든 통밀 또르띠야에 구운 느타리버섯을 올려 먹은 타코


고기를 먹고 싶지 않고 그립지 않다고 해서 내가 고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왜 채식인이면 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부정적으로만 해야 할까? 아님 아예 말도 꺼낼 수 없는 걸까? 채식을 하는 것 자체가 신앙처럼 비치는 게 나는 항상 불편했다. 이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 매거진에 게시한 첫 글에 한 독자분이 채식을 하는 게 꼭 ‘운동권 선수’ 같이 보이는 게 힘들다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내 마음에 너무나 와 닿는 댓글이었다. 채식을 하면 어떤 정해진 하나의 주어진 길만 가야 하는 것처럼, 마치 종교적 고행이나 고강도의 체력훈련 일정을 따라야 하는 압박감과 불편함처럼 느껴지는 게 안타까웠다. 


어느 하나의 식단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제한하며 채식을 하는 건 옳지 않다. 아니, 어떤 것을 하더라도 맹목적인 신념은 해밖에 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고행과 금욕을 위해서 채식을 시작한 게 아니다. 더 즐겁고 건강하게,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채식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과 음식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다양한 문화에서 오는 다채로운 조리 방법, 재료, 식사법 등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하나의 끈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엔 너무나 많은 맛있는 고기 요리가 넘쳐난다. 그 모든 요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건 내게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더 큰 곤욕이다. 


채식은 종교적 신념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운동이다.


고기를 먹는 건 죄악이고 채식을 하는 건 선행인 것처럼 비추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채식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 같다. 채식을 하면 선하고 좋은 사람이고 육식을 하면 무지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채식인들 뿐만 아니라 비채식인들에게도 무의식적인 불편함을 준다. 그래서 내 친구도 내게 고기 이야기를 하는 게 거북하지 않냐고, 이런 ‘나쁜’ 행위에 대해 우리가 너무 대놓고 이야기하는 게 청고한 너의 채식인의 귀에 거슬리지 않았냐고 물었던가보다.


하지만 나는 고결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은 그저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다. 식단으로 나뉘어 우리와 너희라는 사이에 존재하는 선을 허물고 싶을 뿐 나는 어떤 특정 선택만이 유일하고 지고지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갈비 양념을 잘 재려면 짠맛과 단맛이 적절히 섞여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 양념에 몸을 누인 살덩어리의 삶과 죽음에 공감하고 연민하고 싶은, 그래서 더 유난스러워진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벽 없이 소통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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