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 Sep 02. 2023

자꾸 퇴사를 막는 이유가 뭔가요

내가 해야 할 일, 만들어갈 그림은 뭘까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 들어온 지 곧 4년이다. 나의 브런치에는 이 회사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털어냈는지 담겨있다. 털어냈다는 표현이 낯설지만 적절할 거다. 이젠 더 줄게 없다. 아니 줄 힘이 나질 않는다.


눈물로 사랑으로 투쟁으로 지내온 4년의 시간 동안 퇴사를 생각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이젠 작정하고 퇴사하고자 마음먹고 금요 기도회에 간 날이었다. 퇴사를 두고 설레며 기도하는 중에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 사실은 너무 미운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던 그 사람들 이면에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비쳤다. 그리곤 ‘나만 생각하자, 감정은 낭비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사랑의 욕구와 함께함의 소중함 등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좋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걸 내가 왜?’라는 반감이 들었고 내가 할 일은 아니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그 뒤로도 같은 메시지가 나에게, 주변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결국 퇴사를 미뤘다.


입사하기 전에 교회집사님이 꿈 하나를 꿨다. 다른 사람은 열지 못하던 문이 나를 통해 열리고 어둡던 문 너머의 공간이 밝아졌다는 꿈. 그렇게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있겠거니 기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하루빨리 퇴사를 바랄 뿐. 이곳에서 공정을 말하는 사람으로 미움받고, 휴일 없이 육체적으로 갈리고, 중요한 업무를 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에서 내 역할을 다하다가 나를 잃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그만두고 나를 회복시킬 시간을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다.


그때 알게 된 뉴질랜드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뉴질랜드 오지를 탐험하며 성장하는 기회를 가져보세요” 이 문구를 보고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지원했다.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다. 안될 이유가 없으니까. 들떴고 출국날짜에 맞춰 사직원을 써 놓은 내게 갈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모든 사업을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마무리하도록 계획을 짜고, 아무리 스트레스받는 일도 ‘어차피 그때 되면 난 없다’라는 마음으로 외면하고 정신건강을 지켰다. 그런데 뉴질랜드를 못 간다니. 그렇다면 무작정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인데.


너무나 막막했다. 퇴사를 진지하게 각오하니 또 막혔다.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는 이곳에 나는 또 방치된 느낌이다. 원망이라는 산발적이고 불규칙적인 가시가 돋치다가도 결국엔 현재에서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 되려는 걸까’. 퇴사가 또 미뤄진 이 상황에서 앞서 스트레스받기보다 그저 차츰차츰 완성되어 갈 ‘나’라는 삶의 그림을 기대할 뿐이다. 아무래도 몇 달째 쓰고 있는 감사일기 덕에 뇌가 긍정적으로 회로를 돌리나 보다.


뭉개지고 어긋나면서 여러 방면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의 드러내고 싶은 강점을 모두가 알아주던 때, 원하던 대로 풀어지던 때와는 다르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조금 더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거랄까. 화려한 웨딩부케보다 벌레 먹기도 한 들꽃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인가 보다.

가다보니 더 멋진 광경이 펼쳐지긴 하더라


퇴사가 미뤄져 원망하다가 막판에 내 삶에 만족하는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퇴사를 강력히 희망하는 바이다.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줘.


작가의 이전글 행복하라고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