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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Apr 09. 2023

비눗방울 그 작은 게

 3주째 감기가 이어지고 기침가래로 인해 자다 깨서 깊고 답답한 기침 하기를 몇 차례 해야 잠드는 날이었다. 몸이 안 좋은데 잠도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니 더 이상 어떠한 갈등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힘 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때에 대학 친구들이 찾아왔다. 벚꽃을 보겠다고, 외딴곳에서 적응하는 나를 응원하겠다고. 귀여운 돗자리와 그에 어울리는 동네 맛집 닭강정과 분식, 지난주에 생일선물로 받은 마카롱 그리고 천 원짜리 비눗방울이 우리의 봄 나들이에 곁들여졌다.


벚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다. 관계와 일 때문에 지쳐버린 나는 돗자리에 누워 하늘과 나 사이 존재하는 벚꽃송이를 손가락 사이로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과 연분홍 꽃송이와 그 사이 쨍한 햇빛. 화사하다 못해 볼수록 하염없이 보게 되었다.


나의 힘듦을 아는 친구들은 멍해진 나를 위해 비눗방울을 꺼냈다. 무슨 답답함이 담겼는지 얇고 약한 비눗방울을 세차게 불어댔다. 열심히 부는 모습을 보고는 친구들은 웃어댔다. 그 간에 억눌린 감정이 비눗방울을 타고 가볍게 그리고 반짝이며 날아갔다. 분노, 슬픔, 답답함 등이 불어버리는 순간 아름답게 변화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나니 그 감정은 오묘했다. 눈이 뜨이고 웃음 짓게 됐다.


그 천 원짜리 비눗방울이 뭐라고 이렇게 무겁던 나를 산뜻하게 만드는지, 약간의 씁쓸함이 있어 소중함이 극대화됐다. 10초면 사라져 버리는 동그라미들이 떠 있는 순간만큼은 천천히 흘러가는 그들 같이 그 장면에 사로잡혔다.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을 넘겨보는데 비눗방울과 함께한 장면이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저렴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게 이렇게 행복감을 주다니. 머릿속에서 반복재생하며 그날을 잊지 않고 싶다. 메마른 삶에 순간의 소중함이 주는 영원한 치유를 기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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