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8일, 한 주 동안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이 글은 PC에 최적화 된 글입니다.)
최근에 나는 나에게 벌어진 상황들로 인해내 삶에 아주 큰 영감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영감을 다른 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나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쓰기도 했었다.
최근의 그 상황으로 인한 나의 영향을 영감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건, 그 일로 인해 앞으로의 나의 삶의 한 중요한 부분이 바뀌었고, 그 부분은 예전의 나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그 상황과 순간은 충격이었고, 사실은 큰 상처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이 상처를 영감으로 표현한 이유는, 곧 나를 위해서이다.
그 상황에서의 큰 이슈는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무엇인가? 였고,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무엇이였는가? 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지껏 내 삶에 있어서 나의 것 찾는 것보다는 아닌 누군가의 것을 찾아주는 일들이었고,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였다. 의미가 있더라도, 나의 것을 찾아 나가면서 충분히 남의 것을 찾아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런 분별 없이 나의 것이 없는 상황으로 나 스스로가 그렇게 나를 내몰았던 것이다.
이전의 나는 누군가의 것으로 나의 것을 충족하려 애썼고, 결과는 보통 좋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나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는 좋을 수 없었다. 나의 것으로 나를 채워나가야 할 것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도 결과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나 과정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럴때마다 사과하고, 수습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모든 잘못은 나 때문이라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결과가 좋아 그들에게 몫이 돌아갔다 하더라도, 나의 것을 이미 챙겼으리라 생각하고, 더 내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감정적인 대처와 그릇된 판단 뿐이었다.
어찌보면 최근의 상황 역시도 나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었다. 어찌 보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나는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때마다 그게 어떤 것이든 나의 것보다는 남의 것에 초점을 더 맞췄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땐 난 항상 마지막이었고, 약속시간은 항상 남에게 먼저 양보했다. 동선을 짤때나 프로젝트를 진행할때나, 무엇을 하던지 나를 배제하고 시작했다. 나는 그게 '우리' 모두의 일이고, '우리'가 잘 되었을때 '나의 것'이 순수히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순수하게 할 일을 했고, 더 바라지도 않았으니 같이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하고 순탄했을까.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효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더 대단한 이득도, 결과도 없었다.
나의 것이 배제된 상황에서 내가 부족했을 때나 지쳤을때의 충전과 습득은 찾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정작 반드시 있어야 할 나의 역할이 부족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상황을 분석할 때마저도 나의 것은 없었기 때문에, 잘못이나 문제들을 답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질책과 책임은 그때의 그 상황에 있던 '나'였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의 것을 얻지도 못하면서, 나는 책임만 지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들에게도 큰 잘못은 없었다. 나의 것을 아무 의미도 없는데다 얻었다고 자부하고, 말하고 다녔으니 그들은 나에게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 원할 상황이었고, 더 줘야 할 순간에는 나는 내 것을 찾지 않았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된 상황들은 내가 만든 주변 상황이었다.
글을 쓰다보니 세상에 이런 '호구'가 없다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호구'는 누군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욕할수도, 탓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나에게 큰 영감으로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문제나 이야기들은 권선징악이며, 그 악은 내가 아닌 남인 경우가 흔한데, 나의 경우는 권선징악도 아닐 뿐더러, 그 악이 남이 아닌 나에게부터 시작된 일이기에.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 상황이기에 더욱 내겐 영감으로 다가온다.
앞으로의 나는 나의 것. 즉, 내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곰곰히 파악을 한 뒤에 행동에 나설 생각이다. 물론 생각만 하다가 행동을 옮기지 못하는 그런 아마추어 같은 삶은 아니다. 물불 안가리고 나섰던 나의 뒷배경을 남이 아닌 나로써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무엇인가? 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그리고 생각하더라도, 눈치를 본다던지,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정작 중요한 본인을 놓치게 된다.
나 자신과 그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따져보아야 할 것은 그들이나 그들이 만든 이슈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다. 무엇을 주었다면 무엇을 받는지의 기본적인 것들부터, 이것의 다음은 무엇인지까지의 고차원적인 일들 모두, 자신에게서부터 나온다. 그들, 혹은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마라.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이기적이지도, 마냥 순수하지만도 않은 그런 순간들로써 존재하고,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