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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피 Jul 05. 2016

청춘 리턴즈

4월의 어느 날,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

(이 글은 작가의 상상에서 근거한 편지글 형식의 픽션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들 딸들. 국민학교 입학한다며 도시락과 책가방 바리바리 싸들고 손붙잡고 나선지도 엊그제 같은데, 어머니 아버지를 장인어르신, 장모어르신으로 만들더니, 얼마 안되서 손자를 품에 안겨주고.. 이젠 그 손자녀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들으니 미묘한 무언가가 가슴안에 꿈틀거립니다.


이젠 어떻게 눈이 맞아 순수하게 사랑을 하고 평생을 약속했는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복받았었지요. 그러면서 몇번의 불행과 몇번의 아픔이 있었지만, 우리는 견뎌내었습니다. '누구 아빠, 누구 엄마'로써 살아온 것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만, 사실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인지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성공을 거두었다가도 다시금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그러면서 저희 가족은 더욱 단단해졌답니다.


아들 딸들 대학도 다 우리 손으로 보냈고, 시원찮은 집이지만서도 시집 장가도 다 잘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착한 며느리, 든든한 사위를 데리고 와준게 그 이유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식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사는게 바쁘기도 했지만 큰 걸 주지도 못했고, 더 못줘서 미안하기만 한데도 멋지고 훌륭하게 자라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이고 행복입니다.


하지만 이젠 우리 둘 뿐입니다. 아들 딸들에게는 아쉬운 소리로 들릴 수 밖에는 없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더이상 짐이 되기도 싫은게 있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저희의 인생이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야속하다고 해두겠습니다. 우리네 인생에 미련이 뭐고 후회가 뭐겠습니까. 이젠 정으로 붙어있지만서도 우리는 청춘의 세월에서는 서로를 순수히 사랑했었습니다. 아침에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밖에 나가 마실을 다녀오며 노년의 인생을 즐기다가도 들려오는 소식 하나 둘 생기며 떠나보내는 소싯적 친구들을 챙기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이따금 느낍니다. 우리의 젊은 날의 행복을. 사는게 급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그 추억들을 마치 떨어진 벼 움켜집듯이 돌이켜봅니다.


바깥양반이 오늘따라 극성을 떨며 아침을 알렸던 것 하나 빼고는 어느 때와 다름이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인 다음, 날씨를 확인하려고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아직 쌀쌀한 기운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봄 냄새가 났을 때였고, 우린 언제쯤 날씨가 풀리려나, 궁금하던 때였습니다. 상냥한 아가씨가 오늘은 하루종일 맑을거라고 이야기하는게 그때따라 고마웠습니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하루같이 먼지가 쌓이는게 '아, 이것도 나이 탓이었지.'라고 중얼거립니다. 뒤주를 확인해보니 딱 오늘 아침까지 먹고 남을 쌀이 있기에 장을 좀 봐와야겠다는 생각에 채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혼자서 장봐오는것도 이젠 지겨워져 장보는 것 좀 도와달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그날따라 뭐에 씌었는지 순순히 따라 나옵니다. 조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이때부터, 정말이지 상상도 못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문 밖을 나서기 전만 해도 우리는 누구에게나 볼 법한 평범한 노년의 부부였습니다. 사실 노년이랄것도 없는게, 말이 할아버지 할머니이지, 어디가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어중간한 나이입니다. 삭신이 쑤시고 겪을 것은 다 겪지만서도, 그 놈의 '백년 인생'이 핑계거리를 줄여놨습니다. 야속합니다. 여튼 그렇게 평범하기만 했던 일상이 대문을 지나서부터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문 여는 것도 버거워 쑤시고 저리던 허리와 온갖 관절이 순간 멀쩡해진 것을 느끼고 나서 바로 눈치챘습니다. 이 상황을 의심하고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어난 이 기적같은 일을 눈치채고 받아드리며 이 상황은 우리가 여태까지 악착같이 살아온 대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께서 우리에게 잊어버렸던 행복했던 날들을 이렇게라도 기억하라고 해준 선물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하지요. 복권에 당첨되어도 이렇게 믿기지 않고 기쁘지는 않을겁니다. (물론 복권 당첨금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되지요.)


장을 보러 나왔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어버린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재차 우리가 젊은 시절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을 했고 우린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해야되느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인지 금새 판단을 해냈습니다.


"어디든 돌아다니자."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옷장을 허겁지겁 뒤지면서 우리가 젊었을때 뭘 입었는지 생각해내었습니다. 사실 다른 것보다 그 찰나에 놀라웠던건 생각해는것조차 희미하고 뿌옇던 소싯적 추억들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차려입고 나서 길 밖을 나서면서도 저희가 입은 옷들이 촌티나는 옛것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아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젊기 때문에 무엇하나 두렵고 눈치볼 일이 없었습니다. 청춘을 다시 즐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하나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좋았습니다.



집 근처는 번화가입니다. 그래서 집을 나설때나, 집에 돌아올 때 항상 거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 화려한 번화가를 매일 같이 다니며 젊은이들의 객기에 지겹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좋아진 시대이기 때문에 저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누리며 산다는 것에 대한 질투심이 컸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왜 이제와서라고 물으신다면, 저희는 '다시' 젊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전에는 거들떠 볼 수도 없었던 젊은 아이들의 옷을 몇개 골라 바로 입어보았습니다. 물론 직원 총각들의 말은 듣지 않고 입고 싶은 옷을 골랐지만서도..


한참 신나 마음껏 거기를 돌아다녔습니다. 바깥양반은 이 상황이 마냥 좋지 만은 않은가봅니다. 일리도 있는 것이 아무리 우리들끼리는 신나도, 지금으로써 주위 시선은 곱지 않았을테죠. 저는 느끼지 못했지만 바깥양반은 눈치가 빨라 금새 알아차렸나 봅니다. 거의 키우는 개 마냥 질질 끌려다니며 어린 것들의 차가운 시선까지 받으려니 아무리 '젊어졌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나봅니다.



저도 언제까지나 질질 끌고 갈 마음은 없었기에, 분위기 전환을 해야 했습니다. 아직 이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그에게 다시 집에 들러 가져올 것이 있다는 핑계로 다시 집 근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이 앞섰나봅니다. 언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 올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존중했습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옷을 '어울리는 대로' 갈아 입고는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를 돌아다녀 이웃 친구들의 안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의 그도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뭐랄까, 저를 바라보는 눈빛도 사뭇 달라지기도 했고 저도 그 분위기가 싫지 않았습니다. 책임감과 삶의 중압감으로 평생을 살아오던 그의 젊었던 시절을 다시 보니 말 그대로 저희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기쁨을 저희는 흠뻑 즐겼습니다. 가만 보니 이 상황은 저희만 알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았고, 이웃들도 전혀 의심하지 않아서, 골목을 휘젓기도 하고 예전 같으면 창피하기만 했을 일들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청춘이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하며 행복한 이 기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서로 청춘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으니, 조금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단 서로에게 편한 곳을 먼저 들러보는 걸로 하구요. 그래서 우리는 집 근처의 시장을 찾아나섰습니다. 눈에 익은 형님들과 친구들. 동생들과 어디 집 며느리 가족들까지.. 모르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우리에 대한 눈치는 전혀 채지 못했습니다. 어디 많이 닮았다는 눈치를 줄때마나 느껴지는 전율은 조금 예외로 해도 된다면요.




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저희는 못다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보았습니다. 하지만 잘 안되더군요. 여기까지는 미처 쑥스러운 기분을 다 떨쳐내기 힘들었습니다. 저도 저지만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지금 이 상황을 멋쩍게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살짝 다툴 뻔 했습니다. 역시 세월까지는 젊어지지 못했나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으며 있는 정, 없는 정도 다 했으니... 게다가 서로도 그걸 모르지 않으니 아무리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남아 있는건 어쩔수 없나봅니다. 그래도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라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금씩 불안해져 갔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아무리 오랜시간 살아왔어도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 잠깐 이 상황을 즐겼지만, 그 다음을 몰랐습니다.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요즘 참 살기 각박한 때라고. 젊은 친구들 꿈 펼치기 힘들고 어려운 시대라고. 지금 저희에게 닥친 상황이 들리는 말과 많이 똑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조금은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얼마동안 생각에 잠기다 결국은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유?'


'어떻게 하다니, 뭘 말이오?'


'뭐겠어요. 아무리 걱정해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잖수.'


'그것도 그렇지요.'


'당신도 당신이겠지만, 전 그래. 우리가 여태껏 누구 엄마 누구 아버지로 살았지, 우리답게 산 적 있나?


' ...흠.'


'어차피 녀석들도 다 지 새끼 챙기기 바빠서 연락도 안하는데, 나는 걱정 그만할꺼예요.'


'그러시오. 나는 그냥 당신 따라다닐테니.'


'...안 지겨워요?'


'어쩌겠나. 나대로 산다는게 나도 결국은 이런건데..'


'...아유 지겨워.. 그럼 당신 마음대로 해요!'



저야 걱정이 안될까요. 저도 걱정 될 수 밖에 없죠. 그래도 이제는 걱정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생을 노심초사하고 조마조마하게 살아왔는데 지금의 기회를 다시 저버린다면 죽어서 얼마나 후회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어찌보면 제 인생에 있어 몇번 없던 저만의 선택을 했답니다. 바깥사람도 별 말은 크게 없었지만, 동요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며 '될대로 되라지.' 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옷도 다시 한번 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옷에 저희와 어울리는 그럴싸한 옷으로요.




'힘들진 않아요?'


'.....'


'대답 없는 거 보니까 별 생각 없는가보네.'


'당신은 어떻소?'


'난 좋아요. 우리가 이제 죽을 때가 된 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 건진 모르겠지만.'


'허허.'


'믿기지 않은 상황이지만... 너무 즐거운 하루였어요.'


'잊지 맙시다.'


'뜬금없이 그건 무슨 말이예요?'


'잊지 말자고요. 지금 당장 늙은이로 돌아가더라도 오늘 느꼈던 예전 감정들 말이오. 그래도 우소싯적에 사랑했잖소.'


'그랬죠.'


'당신은 궁상이라고 하겠지 몰라도 난 그래요. 뭐, 지금 상황이 왜 이렇게 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여태껏 우린 알 수 없이 살아 왔잖소. 그러니 오늘을 끝으로 그러지 말자는 말이예요.'


'그럼 어떻게 해요?'


'알아가야지. 아직도 우린 모르는게 있을지 모르니.'


'....'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제 그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참 기이하고 신기한 하루였음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 잠자리에 들고 내일 아침에 저희 부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두렵고, 무섭죠. 하지만 이제 하나 확실해진건, 오늘로 저희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같이 있고, 함께 한다는 사실이 첫번째라면 그 다음은 오늘 저나 남편은 평생 해왔던 걱정거리들이 얼마나 쓸모 없는 시간 낭비였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돌아가더라도 늘 그래왔듯이 '그러려니' 하려고 합니다. 다들 저의 이야기가 어딘가에는, 언젠가에는, 누군가에는 무언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마웠어요, 저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Edit by : 박대성

Photo by : 박규성, 박준혁

Make up by : 이미란, 한지연, 이소연

Styling by : 박진하

Model by : 강은정, 이병선

Staff : 전영준, 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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