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사과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법
0. 아이의 기질
우리 아이는 대체로 온순한 편이다. 개구쟁이긴 하지만 위험한 행동은 잘하지 않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지만 드세진 않다. 떼쓰는 일도 드문 편인데 말로 이야기해 주면 알아듣고, 울더라도 울음의 길이가 짧다.
이렇게 쓰고 보니 선호는 크게 손을 타는 아이가 아니다.
물론 용인으로 이사 왔던 초기, 살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 원을 옮기고 안정화가 되니 유쾌하고 잘 웃는 선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부 스트레스는 주고 싶지 않아, 따로 뭘 시키지 않는데도 원에서 배워오는 한글과 영어로 이제 제법 많은 글자들을 읽어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선호가 머리가 좋아요.', '선호 눈치도 빠르고 똑똑해요.' 같은 소리에 안심했는지도 모르겠다.
1. 피어나는 문제
내가 특별히 따로 무얼 하지 않아도 잘 크는 아이.
이게 바로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제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선호가 계속 쉬를 팬티에 조금씩 한다는 것이 주된 주제였다. 처음은 아닌 주제였다. 선호가 아주 조금씩 소량으로 쉬를 팬티에 지리는 것인데, 막상 화장실을 가자고 하면 가기 싫어하고 진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그제야 간다. 그렇다고 팬티에 용변을 보지는 않는다. 살짝 지린 것이 발견되면 원에서 팬티와 바지를 갈아입고 오는 패턴이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너무 궁금한 선생님은 어제 선호에게 잘 물어보았는데, "쉬 하는 느낌을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 멘트에 놀라 나에게 병원을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의견을 주셨다. 그리고 덧붙이시길, 선호가 애착상태도 그렇고 정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혹시나 어머님이 정서 불안 같은 걸로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웠다고. 선호는 정서 불안 쪽보다는 진짜 느낌을 모르는 것 같으니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다 하셨다.
머리가 하얘졌다.
집에서라고 선호가 안 그랬을까. 당연히 집에서도 동일 현상은 있었다. 혼내도 보고, 타일러도 보고, 신경 쓰지 않아도 보았다. 그래도 언젠간 잘하겠지 싶어서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입만 했었는데 그게 문제였나. 어제 전화를 받고 그제야 5세 남아 소변 지림에 대해서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2. 병명과 원인
검색을 하면 할수록 더 답이 없어졌다.
금쪽이에 유사 증상의 아이가 나왔었다. 학술 용어로는 유뇨증이라고 하는데 만 5세 이상 아이들이 소변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선호는 아직 만 3세이고, 줄줄 하는 것이 아니니 유뇨증은 아니나, 증상은 어쨌든 비슷했다.
유뇨증: 지능이나 다른 것에 문제가 전혀 없고 배변 활동에 있어서만 자기 확신감이 없는 상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돌덩이가 내 마음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알아차렸다. 원인은 나라는 걸.
3. 나의 잘못된 배변 훈련
선호가 말이 늦게 트였고, 그래서 배변 훈련도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이사를 10월에 왔고, 배변 훈련은 올해 1월에 시작했으니 딱 6개월이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배변 훈련이 이렇게 힘든 건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나는 그 시간이 정말 많이 힘들었었다. 내 맘처럼 되는 게 없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나의 육아 첫 번째 챌린지였다.
배변 훈련 중에 화내면 안 된다고 했으나 화도 냈었던 것 같고, 안되면 선호 앞에서 실망의 한숨도 쉬었던 것 같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선호에게 윽박지르듯 너 이제 기저귀하면 안된다고 무자비하게 말했고, 엉엉 우는 아이에게 모질게 대하기도 했었다. 결국 그 감정이 고스란히 선호에게 갔다. 결론적으로는 겨울방학 1주일 이후 기저귀를 뗐다고는 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네. 뗀 것도 안 뗀 것도 아닌 그런 상태. 다 내 잘못이었다.
이후, 아이가 소변을 조금씩 지릴 때도 언젠간 저절로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아들 선호라면 이 또한 극복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다. 6개월간 나아지지 않는 거였다면 내가 문제를 살폈어야 했는데,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선호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어려움을 살펴보지 않으려 했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4. 인정하고 넘어서자!
인정할 것. 나의 미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선호를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다. 사실상 선호는 언어 지연이었는데도 센터 안 갔던 게 자랑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고, 이제 말하니깐 '봐봐, 때 되면 다 한다니까' 같은 옛 말을 내뱉었다. 그때와 지금은 분명히 다른데, 내 편의에 따라서 옛날 엄마가 되기도 언제는 또 MZ엄마가 되기도 했다.
오늘 선호가 하원하면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생각이다. 잘못한 걸 잘못했다 말하는 게 참 힘들고, 특히나 내 아이에게는 더더욱 힘들지만, 내가 잘못한 일들이기에 이야기하고 바로 잡으려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 약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는 것 같고, 그저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한 것이라면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5. 사과의 말
미안하다. 선호야. 엄마는 욕심도 많고 기대도 많고 열정도 많아서 너에게 무언의 압박을 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의 속도에 선호가 맞춰주기를 은근히 바랬는지도 몰라. 엄마가 선호 마음을 몰랐어. 선호가 편안해질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줄게. 선호가 좋아하는 뽀송뽀송 팬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데드라인은 없어. 너에게 맞춰줄게.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