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일을 감사로 받지 못하는 자의 후회
지난주 토요일 엄마 아빠가 또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명목상 이유는 매주 토요일마다 동천역에서 있는 아빠의 색소폰 레슨에 혼자 오면 졸리니깐 엄마까지 데려온다는 것. 실질적 이유는 2주 동안 못 봤던 눈에 밟히는 손자를 보기 위해 두 부부가 출동한 것이었다. (이미 레슨 장소가 동천역이라는 것부터가 난 짜증이 나있었다.)
양양에 있을 때 엄마아빠를 너무 고생시켰던 나는, 용인에 이사오자마자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다.
미안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세종-양양이 짧은 거리도 아닌데 아빠는 우리 때문에 1박 2일 왕복 운전만 몇 년을 했다. 엄마는 또 어떤가. 세돌될 때까지 주양육자가 엄마였을 정도로 집에도 못 가고 양양에 콕 박혀서 선호뿐만이 아니라 우리 두 부부까지 양육을 했다. 나무 관리며, 잡초 뽑기며, 매장 외부 관리는 전부 다 아빠가 했고, 엄마는 청소, 빨래, 밥에 우리 둘 멘탈케어까지 담당했었다.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죄송한 마음뿐이다. 양양에서의 생활은 한순간도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엄마아빠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엄마아빠 고생 시키지 않고 나 혼자도 충분히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아니, 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엄마아빠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내가 밀어내고 내가 하겠다 외쳐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틈을 찾아서 자꾸 나에게 다가왔다. 출장 다니며 자기 일을 찾아 하는 사위를 나보다 더 자랑스러워해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면서, 혼자 남아 육아 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애를 키운다고 짠해하기도 했다. 난 그 시선이 싫었고, 그러다 보니 짜증만 늘었다.
결국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말을 했다. 이제 나 좀 그만 신경 쓰고 둘이 편하게 지내라고. 꽤 용기 내어 말한 거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허무했다. "너 이뻐서 그러니~ 선호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우니까 그렇지." 그 대답을 듣고 나의 반응은, 역시나 짜증. "엄마, 제발 그만해."
-
지난주 토요일, 어김없이 찾아온 엄마아빠와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장을 보러 근처 하나로마트에 갔다. 하나로마트에 가면 꽃이랑 나무를 많이 판다는 걸 아는 선호가 신나 했다. 아이는 할머니가 꽃, 나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선호는 꽃구경을 하다 열매 나무가 갖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고, 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하며, 열매가 4개 정도 달린 제법 큰 사이즈의 무화과나무를 사줬다. 할머니 취향을 제일 잘 아는 건, 역시나 선호였다.
그리고 어제, 무화과 하나가 익어서 떨어졌다. 무화과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이선호였다.
낯선 음식이라 분명 안 먹는다고 할 것 같았는데 웬걸, 자기가 씻어서 먹겠다는 거였다. 못 먹겠으면 알맹이만 먹어도 돼~라고 말해줬더니 '엄마, 이거 껍질도 먹는 거야? 그럼 다 먹을래!' 하면서 다 먹고는 '할머니가 선물한 이 열매, 무화과 너무 맛있다'라고 신나 방방 뛰는 거 아닌가.
F인 나는 순간 울컥했다. 이 꼬마도 그 사랑을 온전히 받고 감사할 줄 아는데 나는 뭐라고 짜증을 내는가.
나중에 선호가 똑같은 상황이 된다면 나 역시 저들처럼 할 게 분명한데 말이다.
감사할 일을 감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내 사랑 불도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해줘야겠다.
다짐이 다짐만으로 끝나지 않게 노력해 봐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