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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Apr 03. 2024

성벽과 성문에 대한 소고 (1)

하천과 성, 그리고 수문

성벽과 하천


지금이야 물길을 마을 경계의 밖에 두고, 치수를 제대로 하며, 물의 이용은 상수도와 하수도를 통한다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모든 마을에 성곽을 축조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마을 중심에 위치한 관아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되는 구조였다. 관아는 그 기능을 위해 마을에서 가장 안정적인 입지에 주변과의 교류가 용이한 큰 길가에 위치했다. (혹은 관아가 먼저 세워지고, 길이 나중에 건설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 


필요한 경우, 조선은 읍성을 축조하여 마을을 방비하도록 했다. 혹은 여러 마을의 입지 주변, 군사의 드나듦이 용이한 곳에 터를 잡아 적당한 규모의 성곽을 축조하고, 주변 지역의 군사적 기능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 당시에는 훨씬 많은 읍성이 있었겠지만(기능적으로만 구분하면, 한양도성이나 수원화성도 읍성의 한 종류이다), 지금 제대로 남아있는 읍성은 고창, 해미, 낙안(순천) 세 곳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외 몇 곳이 더 존재하는 정도다. 


문경새재 제 1관문에 위치한 수문


대포가 발명되고 널리 쓰이게 된 후로, 성벽에 의존하는 방어체계는 크게 수정된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성벽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방벽은 군사 방어체계의 핵심이었다. 성벽은 그 당시 기술로는 무너뜨리기 쉽지 않았다. 돌이나 벽돌로만 쌓아올린 (작은 고을들의) 많은 성벽은 발석거 등으로 여러 번 타격을 주어 부수기도 했다. 그러나 고구려 포함 한반도의 많은 성벽은 토벽을 쌓은 뒤 겉을 돌로 마무리 하는 방식이거나, 땅을 깊이 파고 디딤돌부터 차례로 축조한 방식은 그 정도의 타격으로는 파괴가 어려웠다. 게다가, 성벽으로 달려드는 군마의 공격을 제어하기 위해, 성문을 돌아들어가게 하는 방식으로 축조하여 수비력을 강화하기까지 했다. 


고창읍성 정문 앞. 성문에 닿으려면 성벽 수준의 방어막을 뚫어야 한다. 


성으로 드나들기 위한 통로는 원칙적으로 성문 뿐이다. 방어가 정말 허술하지 않은 참에야 월담은 어렵다. 방어용 성벽은 성벽 앞에 목책을 추가로 세우는 경우도 흔했고, 성문과 성벽 근처에 해자를 두어 성벽으로의 접근을 한층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성벽을 관통하는 하천이 있어야만 한다면 어떨까. 


성벽보다 마을이 먼저


역사 속 국가에서 방어 요충지에 먼저 성을 건축하고, 군사를 주둔시키고, 성과 성 주변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정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하고, 주변 지역과 교류하며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도가 높아진 후에, 국가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축성을 결정한다. 


담수는 마을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 물은 지하수로 존재할 수도 있고, 인근의 호수나 저수지가 될 수도 있다. 혹은 하천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이 확장하면서 간혹 하천을 넘어 마을이 확장되기도 한다. 하천이 큰 강 수준이라면 마을의 확장은 하천을 경계로 이루어지겠지만, 얕은 개울 정도라면 마을을 관통하는 형태로 마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현충사 한 켠에 자리한 우물.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최근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위치: 현충사)
해미읍성 내 수로. 형태상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 것 같지만 확실치는 않다. (위치: 해미읍성)


성벽을 기준으로, 내성인과 외성인이 나뉜다. 더 많은 사회적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내성인이 아닌 경우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드나듦을 제한한다는 것 자체가 차별의 일종이기는 하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마을의 전체를 성벽이 감싸야 한다. 강제로 백성의 주거지가 나뉠 경우, 민심이 이탈한다. 그런데, 마을에 하천이 지난다면, 성의 설계가 고민이 될 수 있다. 하천을 성 밖에 두면, 성내 백성들의 물 공급이 문제가 된다. 지속적인 물 공급을 위해, 우물이 필요하다. 충분한 우물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평상시 거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질 뿐만 아니라, 공성전과 같은 방어전략 수행시 물 부족으로 패하기 십상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상수원과 하수원의 기능부족으로 도시의 성장이 제한을 받게 된다. 좋은 예가, 궁예가 세운 철원성이다. 평지는 넓었지만 근처 하천이 충분하지 않았고, 수운이 제한되어 있는 입지다. 교통 통신의 문제도 문제겠지만, 무엇보다 수도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후 토지의 생산력과 수량이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며 몰락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성벽은 드나듦을 컨트롤하기 위한 고대 장치다. 그러나 물은 24/7 흐른다. 댐이나 보가 아닌 다음에야, 성벽으로 하천을 막아버릴 수는 없다. 게다가, 옛날에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근린하천이 곧 (주요) 상수도이자 하수도이다. 상류건 하류건, 하천을 막는 것은 성안 백성들의 삶에 직격탄이 된다. 성벽의 원래 기능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일종의 딜레마가 된다. 


고창읍성 안내문. 내부에 거주형 읍락이 없는, 군사적 목적이 강한 읍성이다. 내부에는 연못과 약수터가 있다.
진주성. 멀리 촉석루가 보인다. 남강을 끼고 있으며, 과거에는 하중도의 형태였다고 한다.


한양도성의 청계천 관련 수문이 좋은 예다. 청계천은 사대문 안 거주지역을 관통했다. 상수원은 다양했을지 몰라도, 하수원은 청계천이 되기에 용이했다. 하수는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물질을 포함한다. 최소한의 (야간) 치안을 위해 울타리 형태의 수문을 설치하여 사람과 짐승의 드나듦을 억제하고 물의 흐름은 유지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오물들이 쌓이고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 수문을 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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