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gwoo Kim Mar 27. 2024

눈구름을 찾아 헤메다 (2)

추사 김정희 고택 방문기 (1)

헤메기의 미학


헤멘다는 것은 보통 좋지 않다. 네비게이션이 잘 돼 있는 요즘은 그럴 일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종 일어나는 편이다. 가뜩이나 운전을 통한 크루징을 좋아하고, 특히 비나 눈 소리를 들으며 운전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특정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움직이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다만 그런 목적을 갖고 꽤나 장거리를 운전한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을 것 같다. 


해미읍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잘 보존된 읍성으로 알고 있었고, 골목식당 방영으로 인해 몰린 인파가 어느 정도 해소된 후 방문할 요량이었다. 추위가 한 풀 꺾인 1월 중순의 일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현충사를 방문했는데, 하필 동계 점검으로 인해 충무공 이순신박물관이 닫았다. 시간이 남았다. 오후의 애매한 시간, 인근에 있던 해미읍성 방문이 그렇게 잡혔다. 다른 곳은 들를 계획이 없었고,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애초에 나의 30대 전부를 한국을 떠나서 있었고, 십년 넘게 밖에 있다가 들어온 지 2년이 채 안되었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살아본 적도 없고 아무 친척도 거주하지 않는 충청권에서 살게 된 터라, 백지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네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운전하는 것은 사뭇 기계적이다. 즐기는 운전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특히나 새롭게 방문하는 곳이라면, 길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표지판을 많이 보며 운전하려고 한다. 현충사를 향해 가는 길은 예산을 지나간다. 예산 하면 예산시장밖에 몰랐다. 그러나, 출구 표지판을 통해 네 곳을 알게 되었고, 그 중 세 곳은 이미 방문했고 한 곳은 방문 예정에 있다. 추사고택은 그렇게 찾은 첫 번째 방문지이다. 


*"눈구름을 찾아 헤메다" 시리즈의 첫 번째 방문지였던 고창읍성은, 시간순으로 볼 때 추사고택 방문보다 뒤에 일어난 일이다. 해미읍성과 현충사 방문길에 추사고택과 예산 수덕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고군산군도 여행길에 추사고택을 들러서 가게 된다. (예산 수덕사는 당시 기상악화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후퇴했다.) 또한, 고창읍성에서 올라오는 길에 김제 금산사 표지판을 보게 되었고, 이 여행길에서 우연히 건져올린(?) 방문지가 이렇게 세 곳이 된다. 


추사고택 안내도. 생가 몇 채 있겠지 했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단순한 생가가 아니었다


추사고택이라 해서, 그냥 생가 한옥 몇 채 있겠지 예상했다. 해당 여행의 진짜 목적지였던 고군산군도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기에, 추사고택은 이른 오후의 여정 잠깐을 해소하기 위해 잠깐 들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주차장을 마주하면서부터 산산히 부서졌다. 


추사고택의 모습. 고택 외에도 기념관, 묘역, 체험관 등이 있었고, 기백명의 방문객을 감당할 규모였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대사를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선호도도 고대사 속 인물들 쪽이 더 높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조선 후기 사람이다(정조-순조 대). 배워서 알지만, 서예 혹은 금석학에 대한 관심이 낮고, 정책에 관련한 부분 보다는 그의 학문적 영역에서 훨씬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매우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고택과 기념관의 규모를 마주하고, 이렇게 큰 사람이었던가 하는 생각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날씨가 매서운 탓에, 방문객은 나 하나였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고요한 공간 속에서 공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건축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축물인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꽤나 규모 있는 한옥이었고, 실제 추사 및 그의 가족들이 생활했던 건축물인 데다, 곳곳에 추사의 글귀를 기둥마다 붙여 놓은 덕에, 인물의 기품이나 생각이 느껴졌다는 점이 다른 한옥 기반의 관광지를 방문했을 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 


추사고택 안채 전경. 기둥마다 추사의 글귀와 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영주 선비촌 등 한옥 관련 관광지를 몇 번 가본 덕인지는 몰라도, 안채 방문시 뭔가 다르다고 느낄 만한 것이 있었다. 아궁이가 둘이었다. 자세한 구조는 모르겠으나, 다행히 안내문이 나를 반겼다. 부엌이 두 개고, 각각 기능이 나뉘어져 있었으며, 이것이 왕실 주택 구조라고 한다. 각 부엌을 다른 사람이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왕실 사람은 그 어떤 부엌에서도 일하지 않았을 거 같기는 하다. 다만, 왕실 내 음식의 준비를 담당하는 자들이 따로 있기는 했지만, 음식에 관하여는 왕비나 공주들도 간혹 왕실에 드나들긴 했던 것도 사실이다. 추측해본다면, 난방용 부엌은 다른 일꾼들 몫이었던 것 같고, 요리용 부엌은 화순옹주가 함께 사용했을 것 같다. 


추사고택의 안채는 그 부엌 구조상 왕실 주택이라고 한다. 


한옥을, 처음 볼 때나 신기해서 이것저것 찍고 관찰하고 했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하다 보니, 그렇게 특이해 보이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꽤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다보니, 한 채의 한옥이라 하기엔 꽤 큰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얕은 구릉지에 자리한 집이었고, 대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지대가 높아지면서 본채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추사고택 내부. 우측 문이 대문이었던 것 같다. 뒤에 옆문(?)이 있다. 
고택 옆문(?)으로 나와서 안쪽을 찍은 모습. 멀리 안채의 부엌 중 하나가 보인다.
고택 옆문은 좀 높기에, 이렇게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은 추사 선생 가문이 대대로 이용했다는 우물.


관람로는 대문을 통과하여 안채와 본채를 보고, 옆문으로 나오는 구조였다. 대문이 제일 낮고, 옆문은 좀 높다. 이동약자를 위한 통행로는 옆문에 마련되어 있었고, 내부 마당의 계단도 일부를 경사로로 준비해 놓았다. 사찰이나 박물관 등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고 있지만, 이런 야외 유적지의 경우 이동약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곳은 꽤 신경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었다. 하나는 옆문의 높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올 때 보는 문의 크기보다 문의 높이가 낮다. 위에는 머리를 찧기 딱 좋도록, 꽤나 무게감 있는 나무판이 불쑥 튀어나와 있다. 조심을 덜한 탓도 있겠지만, 그때의 그 고통은 석 달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다. 덕택에 추사고택은 내 뇌리에 더욱 강하게 남을 수 있었다. 


추사고택 바로 옆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관리동이 있다. 소형 추사고택 느낌의 모습이다. 그 옆으로 조경이 잘 된 언덕과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묘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화장실은, 여러 방문지에 딸린 화장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이 곳의 방문시점은 2024년 1월 22일, 서쪽으로부터 폭설 눈구름이 몰려오던 날이고,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다. 현장 기온은 영하 10도에 달했고, 체감기온은 영하 17도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기념관 내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겠지만, 정황상(?) 그곳은 너무 멀었다. 


화장실 내부는 너무나 청결했다. 문제될 것은 없어보였다. 귀를 때릴 정도로 크게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당 음악은 헝가리 무곡 제 5번이었다(녹음했다가 찾았다). 그 때만 그 곡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건물이 아닌 정식 건물이었지만, 바람을 막아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리고, 수돗물은, 체감기온보다 차가운 물이었다. 바깥의 온도를 그대로 한 시간 이상 쌩(?)으로 맞으며 흘러온 듯한 느낌이었다. 수전 옆 손 건조기에서는 차가운 바람만 나왔다. 그 어떤 요소도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 연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 곳에서 집중력을 잃어버려서, 추사고택에서 그렇게 심하게 머리를 찧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을 나는 드론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