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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Mar 23. 2024

시간을 나는 드론 (9)

대가야박물관 방문기 (2) - 캐스팅보트

포상팔국의 전란


포상, 바다 연안의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들을 말한다. 변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넓게는 현재의 전남 지역의 침미다례 부근에 걸쳐 분포하던, 여덟 개 국가가 동맹을 맺고 기존 변한 주도국들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이다. 전쟁의 대상국은 금관국 혹은 안라국이다(안라국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또는 둘 다일수도 있다. 이 전란에 대해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결정적인 전투는 최소 두 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료 및 발굴조사로 알려진 것은 대강의 정황 정도다. 안라국 또는 금관국을 향해 연합군(?)이 진공했으며, 아직 진한을 통일하지 못한 신라(사로국)는 원군 요청을 받는다. 금관국은 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거나 혹은 발을 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로국의 원군은 해상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두 번째 전투는 현재의 울산 근처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두 번 모두 사로국 원정군이 여덟 국가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해당 국가들이 멸망하거나 할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 같지도 않다고 한다. 다만, 일종의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 되므로, 당시까지 주도권을 쥐었던 금관국과 안라국은 서서히 변한 내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금관국은 그 위치상 왜와 변한, 그리고 신라를 잇는 중계무역을 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변한의 초기 주도권을 쥔 데는 당대 수로왕의 명망도 한 몫 했겠지만, 무엇보다 철과 교역으로 쌓은 국가의 부가 그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금관국 서쪽에 위치한 변한 국가들이 잘 통일되는 것보다 적당한 수준으로 경쟁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금관국에게는 더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로 통일되면, 국가 간 교역에서 힘의 균형이 깨진다. 적당히 긴장감이 있어야, 교역의 주도권을 쥐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금관국에게는 신라도, 변한도, 안라국도, 왜도 모두 (교역 대상자로서) 중요했을 것이다. 


금관국은 어느 편도 들지 않되, 양쪽을 모두 보면서 저울질만 하다 둘 모두의 민심을 잃었을 수 있다. 괜히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었다가 교역으로 먹고 사는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포상 국가들이라면, 금관국의 교역의 직접적 당사자였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를 금관국은 경계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안라국과 금관국의 관계는 밝혀진 바 없으니 전혀 알 수 없지만, 수로왕 시절부터 금관국은 사로국과 친밀했고, 안라국이 위급시 사로국에 원군을 요청한 것을 보면, 금관과 안라는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정도로는 봐야 할 것이다. 


*'가야연맹체' 또는 '**가야'는 후대 고려에서 지칭하여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들은 지리적 특성상 더 자주 더 쉽게 교류했을 가능성은 높으나, 일국에 준하는 강한 공감대는 없었다. 그들의 실제 국가 이름은 구야국(또는 금관국), 안라국(또는 안야국), 고차국(유사한 이름이 많음. 소가야 지칭. 현재의 경남 고성군) 등이었다. 


안라국은 금관국과 달리, 내부 수운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남강은 섬진강 동쪽에서 발원하여, 지리산을 서쪽에 끼고 흐르다 동쪽으로 굽이쳐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낙동강의 하류는 어차피 금관국의 영향력 하에 있다. 변한의 소국들은 해안 뿐 아니라, 남강, 낙동강, 황강, 또는 섬진강 주변에도 다수 분포했다. 이 전란이 내륙의 국가들이 배제되어 있음을 알리는 "포상팔국"인데는, 내륙 수운에 기대는 국가들의 경우 그들의 생존에 있어 안라국이 꽤나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반해 해안가에 있던 국가들은 금관국이 중요했으면 중요했지 안라국과의 관계 단절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금관국처럼 바다에 면해 있으니, 왜와 신라 간의 교역 또한 아예 불가능하지만은 아니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대략적인 변한 소국들의 위치 안내도. (위치: 고령 대가야박물관)


오비이락


이 때를 알고 기다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결과론적일까. 변한 연맹체와 진한 소국들을 야금야금 통합해가던 신라(=사로국)는 힘이 엇비슷했을지 모른다. 물론, 여기 변한 연맹체는, 포상팔국과 전란에 참여하지 않은 내륙 변한 국가들, 그리고 초기 대가야(=반로국)와 안라국, 금관국을 모두 포함한 경우를 말한다. 금관국이 크게 관여하지 않은 상태로(신라의 원군이 안라를 향할 수 있으려면, 금관국의 앞바다를 지나서 금관국이 관장했을 낙동강 하류를 지나야 한다. 2차 전투로 추정되는 울산으로, 해상 루트로 포상팔국 연합군이 진격하려면, 역시 금관국의 앞바다를 지나야만 한다. 육로로 진행되려면, 사로국이 아직 병합하지 못한 다른 진한 국가들을 지나쳐야만 한다. 금관국은 오랫동안 해상루트를 통한 국제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따라서 해상 군사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양측이 금관국의 앞바다를 통과하는 루트로 진행했기에, 금관국은 이 전란에 대해 특별히 개입하지 않으면서 양측의 눈치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들의 이 결정은 단순히 양측을 저울질하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신라의 압박이 있다. 금관국은 현재의 동래에 위치했던 거칠산국 다음으로 신라에 가까이 있다. 금관국의 교역 상대국은 여럿이었지만, 신라는 그 교역로의 끝에 위치한 국가이자 꽤 큰 시장이었다. 신라 시장을 잃으면 금관국의 동쪽은 왜국만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사로국의 성장은 안라국과 금관국 모두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웃 나라의 성장은 교역 시장의 성장으로 무던하게 해석할 일이 아니다. 잠재적 위협이다. 다만, 낙동강 내륙 수운을 총괄하던 안라국에 대한 포상팔국의 진공은, 이미 목 아래 겨눠진 칼끝이다. 현실의 위협이다. 잠재적 위협과 현실의 위협, 저울질로 지칭하기에는, 어느 한 쪽도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파국(=반로국)에서 대가야로의 변화를 설명하는 전시문. (위치: 고령 대가야박물관)


안라국은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변한 소국들을 연결하기 좋은 입지를 갖고 있었다. 국부와 유명세는 금관국이 최고였겠지만, 안라국 역시 많은 국가들을 꽤 오랫동안 다독이면서 이끌어 왔을 것 같다. 한두 나라도 아니고, 몇백 호 짜리 고을들도 아니고, 어설프게나마 국가의 체계를 이룬 국가들이다. 모두를 잘 관리하려면, 국력으로 찍어누르던가, 아니면 각자의 수요를 외교적으로 잘 조절하는 수완이 오랜 기간 유지되어야 한다. 안라국 역시 소국 중 하나였다. 반파국(=대가야)처럼 생산력이 높은 지역도 아니다. 결국 지리적 입지 하나뿐인데, 초반 국력의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 흐려질 강점이다. (외교적) 수완이 오래 가봐야 얼마나 가겠는가. 금관도 안라도, 그들의 성장의 발판이 곧 그들을 향한 창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전란의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쌓여가는 불만은 언젠가는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가야, 즉 반파국은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을까 싶다. 포상팔국의 전란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들에서, 대가야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전쟁의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도 포상팔국의 난은 다루지 않고 있다. 안라국의 변한 내 위세가 살짝 꺾일 뿐, 다른 당사자들의 세력 역시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안라국과 금관국으로 위시되는 해상 교역로에서도 대가야의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다. 


포상팔국의 난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3세기에서 4세기 전후라고 한다. 고령의 반파국이 대가야로 이름을 바꾸고 국제 무대에 등장할 때, 대가야는 낙동강에 면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섬진강 유역까지 세력을 넓힌 상태였고, 섬진강 하구를 통해 해상 국제 교역에 발을 들였다. 이 때는 4세기 말 정도라고 한다. 그냥 안라국, 금관국, 그리고 반파국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시기가 묘하게 (연결된 것처럼) 떨어졌던 것 뿐일까. 정말 대가야는 기록처럼 포상팔국의 전란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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