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 금 전화영어는 늘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how are you?
그럼 나는 정말 그 대답으로 답한다.
국내 인구 5000만 명 중 4000만 명은 알고 있을 그.
fine thank you로.
심지어 뻔뻔하게
and you?
까지 붙이곤 한다.
그럼 선생님이 왜-?라고 묻는다.
(필리핀에 사는 그녀의 이름은 매디슨이다. 물론 질문은 영어로 why다.)
멈칫한다. 잠시 고민한다.
기분이 괜찮긴 한데 왜 괜찮은진 모르겠다.
날씨가 좋아서, 주말이 다가와서
따위가 전부다.
스스로 생각해도 싱겁다.
또 따져보면 딱히 댈 이유가 없다.
거울을 보며 묻는다.
날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연휴 전날 밤 침대 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쥐포. 절반쯤 채워진 1L 흰 우유. 걸레질을 하고 난 뒤의 바닥. 색색별로 개켜놓은 수건. 향수를 두 번 뿌리고 나서 손목에서 나는 향. 갓 드라이클리닝을 하고 난 스웨터. 새 노트, 새 다이어리. 마음먹고 썼을 때의 내 글씨체, 텅 빈 버스, 그중에서도 오른쪽 맨 앞자리, 공항에서 수하물을 부치고 난 뒤,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 흰색 야구공, 텅 빈 잠실운동장 기자석, 5호선 오목교역, 신촌의 수제비집, 참깨가 뿌려진 김밥, 참치김밥, 떡이 알맞게 잘 불려진 떡라면, 한 번에 두 개 끓여먹는 짜파게티.........
the favorite thing을 부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어린 남매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내 고민한다. 나는 왜 how are you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을까. 내 기분에 인색했을까. 묻는다.
“날 돌아보게 될 줄 아는 여유가 생겼어”라고 번지르르하게 말하면서 정작 스스로에게 인색했던 건 아닐까. 다시 묻는다.
돌아오는 전화 영어에선 어떤 fine thank you를 대
해볼지 고민한다. 그조차 녹록지 않다면 쏘 테러블이라고 나 뱉어봐야지. 사무실에 앉은 나는 혼자 히죽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