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김보들씨 생각이 났다.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촉촉하고 부드럽고 보들보들하던 그 피부.
비결이 뭐냐고 물었을 때,
화장을 안 하고 얼굴에 뭐 많이 안 바르는 거라고 했던 소박했던 대답.
마지막에 보들보들 피부가 너무 좋았어서 잊고 있었는 데 항암 막바지에 피부가 너무나 심하게 건조해지고 살이 일어나서 고목나무처럼 갈라지고 각질이 후두둑 떨어진 기간이 꽤 있었다. 보기만해도 가려워보이고 아플 거 같아서 로션 발라준다고 하면 끈적거려서 귀찮다고 돌아눕기 일쑤였는 데, 그 돌아누운 등의 옷자락을 억지로 재빠르게 올리고 로션을 둠뿍 짜서 바르면 ‘앗 차가워, 바르지 말라니까!’ 하고 삐악. 내가 내 손바닥을 서로 비벼서 로션 온도를 높여서 발라주면 그 때는 또 조용히 가만히 있던.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구석구석 몸의 앞뒤로 로션을 한참 발라주고 마사지 해주고 팔다리 쓸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너무 많이 바른다 싶으면 이제 그만 바르라고 손을 빼고 힘차게 옷 매무새를 고치던. 암튼 두 내외가 끈적한 건 끔찍이도 싫어했었는 데, 둘 다 억지로 로션을 많이 발라줬었다.
그렇게 치덕치덕 로션칠을 했었어야 했었는 데, 어떻게 마지막엔 김보들씨가 되었나 생각해보니 항암종료 이후에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온 거 였다. 얼굴 손발 등 배 할 것 없이 전신이 다 갑자기 매끄럽고 보들보들 해졌던. 그래서 자꾸 만지고 싶던. 그래서 자꾸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고 허락 받고 만져주던. 김보들씨라고 불러도 가만히 있던.
오감 중, 어떤 감각이 기억에서 먼저 지워지는 지 모르겠지만 촉감이 이렇게 생생할 줄이야. 퇴근길에 보들보들한 그 촉감이 갑자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