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RAVEL VOL.32
아트래블 편집부
동화작가 안데르센, 화가 칸딘스키, 첼리스트 요요마. 이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여행. 이들은 모두 여행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여행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해졌다. 세가지 질문이 생겼다. 아트래블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예술가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예술과 여행은 어떤 관계일까?
미국, 불가리아, 러시아, 멕시코 태생의 예술가이며 동시에 여행자인 이들. 그들과의 인터뷰는 모호하면서도 강렬하고, 여행과 예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부단하게 오간다. 아트래블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틔워낸 저마다의 확신이었다.
USA ┃ GUITARLIST
존을 처음 만난 곳은 홍대의 뮤직 바였다.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 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존은 바에서 흘러나오는 거의 모든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냥 노래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밴드의 역사와 비화까지 컴퓨터처럼 정리해서 이야기 하곤 했다. 그는 기타리스트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지의 밴드와 협주를 한단다. 존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왜 여행을 시작하게 됐나요?
오래전 일입니다. 애인이 있었죠. 그녀는 언제나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보길 원했어요. 그래서 결정했죠. 다른 나라에서 함께 살아보기로요. 그 길로 우리는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어요. 프라하에 도착하는 순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만큼이나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는 프라하에서 6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6년뒤 저는 프라하를 떠났습니다. 왜 프라하를 떠났냐고요? 가장 큰 이유는 이별이었습니다. 애인이 저를 떠났죠. 더 이상 프라하에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프라하 곳곳에 남아있는 그녀와의 추억을 마주할 수 없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의 첫 번째 여행은 프라하가 아닌, 내 사랑- 그 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여행은 그녀에게서 도망쳐 어디든지 가는 것이었죠. 어쩌면 저의 여행은 여전히 사랑 때문에 진행중인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예술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쳤습니다. 이게 예술 활동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던 시기부터였죠. 미국의 RED HOT CHILLI PAPAERS 같은 밴드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요. 기타 치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어요. 그냥 기타를 치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좋았죠. 기타연주는 저에게 그런 의미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런 것이에요. 각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 말이에요. 꼭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죠.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도 저는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는 행위. 바로 그거요.
여행과 예술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에게는 여행도 예술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죠. 특히 기타를 치는 저에게 여행은 조금 더 특별한 예술 활동입니다. 일렉트로닉 기타는 공간에 따라 다르게 연주해야 합니다. 작은 공연장이냐, 아니면 큰 공연장이냐에 따라 다른 멜로디를 내야 하죠. 같은 멜로디를 연주해도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관객인지도 매우 중요해요. 그날의 기분과 상황도요. 메탈이 어울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부드러운 멜로디가 어울리는 날도 있어요. 연주자는 그 모든 것을 빠르게 캐치해야 합니다. 관객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해야 비로소 관객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언어, 문화, 상황을 가진 관객으로 가득 찬 공연장을 찾아가는 것은 저에게 엄청난 도전입니다. 어려운 도전인 만큼 얻는 것도 많습니다.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많으니까요. 여행을 할 수록 제 기타 소리는 더 풍성해집니다. 한 사람을 더 공감하면, 기타도 한 단계 성장합니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사실 인생은 찬란합니다. 일상에선 그 찬란함을 경험하기 힘들죠. 그래서 여행을 합니다. 모든 인생에서 찬란함을 발견하려고요. 수많은 여행지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부분도 마주하게 됩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른다고요? 그럼 여행을 떠나보세요. 이미 무엇을 사랑하고 있다고요? 그럼 그것을 살아보세요. 그게 바로 예술입니다. 모든 인생은 여행이고, 예술이니까요.
VLADIMIRA HRISTOZOVA
BULGARIA ┃ STREET ARTIST
블라드미라는 거리 예술가다. 한 밤의 어둠을 배경삼아 불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영화에선 보통 이런 예술은 근육질의 남성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의 몸은 왜소하다. 깡마른 작은 몸으로 불을 다스린다.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밤마다 불쇼 공연을 한다. 위험해 보이는 공연이라 그런지 거리 공연을 하다 쫓겨나는 일도 많다. 도대체 무엇이 끊임없이 그를 불 속으로 이끌고 있을까.
왜 여행을 시작하게 됐나요?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딱히 없어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에게 시간이 많아졌고 집에만 있기는 따분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거창한 이유같은 건 없어요. 따분함을 느끼면 여행을 떠나죠. 불가리아는 히치하이킹을 하기에 참 좋은 나라예요. 짐을 싸들고 나가면 10분 안에 저를 태워줄 운전자를 만날 수 있죠. 참 쉽죠. 여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저는 제가 예술가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불쇼를 하게 된 것은 단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였으니까요. 왜 하필 불쇼냐고 묻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불쇼를 하기 전엔 저글링을 했어요. 생각보다 저글링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쇼를 배워 해보니 워낙 강렬해서인지 금세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글링 공연 세 번을 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불쇼는 단 한번의 공연으로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쇼를 선택했죠. 언젠가 있었던 일이에요. 이스탄불 이집트 마켓 근처였죠. 공연을 마치고 나서 한 관객이 저에게 말을 걸어 오더군요. 그는 저를 거리의 예술가라 불러주었습니다. 호칭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어요. 차마 그에게 이 불쇼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어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거창한 말들로 저의 쇼를 설명했죠. 제 이야기를 듣던 그는 대단한 영감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어요. 예술이 뭔지 사실 모르겠어요. 다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 얻은 게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든지, 보는 사람이 예술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모두 예술이라는 것 말이에요.
여행과 예술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불공을 휘두르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거리의 예술가라 불리지도 못했겠죠.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습니다. 여행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제 앞에 놓인 돈 통에도 각기 다른 화폐들이 놓였죠. 저에겐 당장에 쓸모 없는 화폐도 많이 들어옵니다. 아마도 대가를 지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행지 화폐가 없었던 어느 여행자들이 넣어 놓은 것이겠죠.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화폐나 동전을 넣었을 거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화폐가 하나 있었습니다. 시리아 화폐였죠.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로 피난 온 난민 중 한 사람이 두고 간 것이었어요. 원치 않는 여행 중이었을 겁니다. 그들의 슬픈 여행에 저의 공연이 작은 힘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아닌, 저 스스로 제가 사람을 위로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한 단 한번의 순간이었습니다. 여행은 저를 예술가로 만들어 주었어요.
ANNA FIVA
RUSSIA ┃ MODEL
길쭉한 팔다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180cm가 넘는 장신의 안나는 모델이다. 러시아에서는 프로 모델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자신이 기획한 사진 속에서 포즈를 취한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지역에서 얻은 영감을 포즈로 표현한다.
왜 여행을 시작하게 됐나요?
우리 모두의 가장 거대한 여행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시작된 것이라 생각해요. 저의 첫 번째 여행지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둘러싼 숲을 타이가(Taiga)라고 부르더군요. 어린시절부터 타이가 너머의 세상을 꿈꿨습니다. 분명 숲 너머에 거대하고 흥미로운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 때 마다 구글 지도를 켜놓고 가고 싶은 나라에 표시를 해 두었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지도에 표시된 여행지를 돌아다녔습니다. 타이가 너머의 러시아 곳곳을 돌아다녔죠. 러시아 다음엔 베트남, 한국, 포르투갈을 여행했어요. 그 모든 여행지들이 제가 태어난 마을과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시간도, 돈도, 사람들도 모두 달랐죠. 여행지마다 있는 그 차이들이 일종의 마법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면서 마법은 점점 현실이 됐죠. 지금은 지구가 거대한 집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예술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이죠. 우리를 둘러싼 이 방대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 예술은 모든 풍경과 사람, 상황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그게 제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죠. 많은 사람들은 삶에 지칠 때면 예술을 찾아요. 일상적인 생활이 지겹거나, 무료해 질 때 삶에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죠. 예술작품은 언어도 필요 없죠. 작품을 보고 얻는 감정이나 영감, 그게 전부예요. 간단하죠. 예술이 이렇게 간단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아가죠. 예술은 당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을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자신의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 말이에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요? 저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여행과 예술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예술과 여행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행이 물리적으로, 또 외적으로 시야를 넓혀준다면, 예술은 감각적이고 내적인 시야를 넓혀주죠. 저는 여행을 하며 언제나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두고, 그림을 그려 놓죠. 가끔은 작은 돌이나, 티켓 같이 간단한 수집품들을 모으기도 해요. 순간의 감정과 영감을 기억하려는 나름의 노력입니다. 여행을 하며 수집하고 기록해놓은 모든 것들에서 얻은 영감을 포즈로 만들어냅니다. 여행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온 몸으로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표현합니다. 가끔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포즈나 표정이 나오기도 하죠. 심지어 제 자신에게도 생소한 표정이 나오기도 해요. 그런 사진이 나올 때 저는 가장 희열을 느낍니다. 세계는 모두 다르고, 제가 느끼는 영감과 감정도 모두 다르니까요. 아마 여행하고 있지 않다면 나오지 않았을 표정과 포즈일 겁니다. 여행은 매번 제가 가진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게 해주죠. 여행과 예술은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죠. 저는 생각보다 많은 표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깨닫기까지 수많은 여행지를 거쳐야 했죠.
PACO ROCHA
MEXICO ┃ PAINTER
파코는 멕시코 출신의 여행가이자 화가다. 독특한 색채가 눈에 띄는 파코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이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그의 그림은 대부분 해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음을 그리는 화가다.
왜 여행을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시각 예술을 전공했죠. 시각 예술이란 눈으로 감각할 수 있는 예술의 총칭입니다. 사진, 회화, 조각 모두가 포함되죠. 저는 그 중에서도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 취직이 쉬웠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제법 이름있는 회사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했습니다. 돈도 잘 버는 편이었어요. 모든 것이 순조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예술가로서 직장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거죠. 더 많은 감정과 삶의 모양, 색채, 서사를 갈망했어요. 이런 갈망은 한 번 느껴지기 시작한 뒤로부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점점 제 생활을 바꿔 나갔죠. 그러다 결국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 버린 겁니다. 처음엔 굉장히 감정적인 선택이었어요. 그게 벌써 13년 전 일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여섯 살 때였죠. 할머니는 제가 잠에 들기 전에 항상 멕시코 전설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죽은 사람들의 도시에 관한 것이었죠. 매일 밤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잠이 들었어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머리로만 상상하던 할머니의 전설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해 놓은 해골들을 그렸어요. 그 그림을 본 학교 선생님은 저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해골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대학에서 시각 예술을 전공하면서 저의 해골 그림에도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죠. 물론, 대학생이 되어서도 저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진저리를 쳤답니다. 살면서 몇몇 사람만이 저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에게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를 주었죠. 저에게 그림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의 상상에 공감해줄 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끈 같은 거요.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저는 정신과를 가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저를 공감해주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여행과 예술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2005년부터 여행을 시작했어요.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죠. 몇 달간 인도네시아의 정글에서 생활해보기도 했고요, 어느 사원 벽에 그림을 그려 넣어 주기도 했어요. 가장 강렬한 경험은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의 설교를 들은 것과 필리핀에서 한 원주민을 만나 신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죠. 달라이 라마는 제 그림에 철학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어 줬어요. 그의 설교를 들으며 죽음과 나의 그림 사이에 어떤 철학들을 세워 나갔어요.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죽음'이라는 주제가 가장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그림에 다른 나라의 죽음에 관한 신화를 더하기 시작했어요. 재밌는 사실은 해골은 어느 나라에 가도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이에요. 해골에 기초한 밑그림 위에 그 나라의 신화와 어울리는 그림과 색채를 더해 나갔어요. 저의 해골 그림 위에 여행지의 죽음을 담아 냈죠.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저의 그림에 멕시코 사람의 죽음만이 그려져 있었을 거에요. 여행은 제 그림에 철학과 지평을 넓혀 주었죠. 여행과 예술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어요.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이죠. 커피 한잔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하루 종일 혼자 생각할 수 있어요. 저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혼자 만의 시간에 상상을 합니다. 머릿속으로 여행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미지화 시키는 일을 하죠. 그 시간을 거쳐야 그림 하나를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가지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는 저의 상상 속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독일, 체코, 잉글랜드, 그리고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었습니다. 지금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시회를 준비 중입니다. 저는 벨기에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은 오늘도 제가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예술가에게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결국엔 삶에 용기를 얻는 일이에요. 저는 죽음을 그리는 화가 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을 그린 그림은 저를 오늘도 살게 해줍니다.
인터뷰어│아트래블 편집부
인터뷰이│존 엘더만·블라디미라·안나 피바·파코 로차
사진│존 엘더만·블라디미라·안나 피바·파코 로차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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