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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Mar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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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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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PROLOGUE 

우리는 누군가의 의미이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중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에 의해 완성된다. 최초의 숨도 부모에 의해 불어넣어 진다. 세상에 혼자 완성되어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의존 해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이의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되며 인간은 자신을 완성시킨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이고 싶은 마음은 매우 태생적인 욕망이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타자에 부여된 의미로 자기 자신을 다시 투영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의미로 규정되기를 원하니까.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의미로 규정된 도시다. 예술 혹은 낭만 혹은 자유의 도시. 수많은 예술가가 나고 진 곳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곳. 파리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고상하다. 물론, 세느 강이 생각보다 더럽고, 하수구 냄새가 심한 도시라는 것은 누구도 파리의 의미에 포함하지 않는다. 아울러 파리의 예술가들 특히, 남성예술가들의 여성편력과 여성의 성적대상화는 예술이란 이름 아래 아름답게 포장됐다. 파리는 사실 그런 도시다. 아름다움과 고상함 속에 허세와 욕망을 감춘 곳. 이 도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갈망하던 찰나, 만난 영화가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다.


영화는 미국 자산가의 딸과 결혼한 소설가 길(오웬 윌슨)이 파리로 신혼여행을 오면서 시작된다. 길은 파리에서 오묘한 경험을 한다. 시간 여행. 매일 밤 정오가 되면 그는 파리의 1920년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시간 여행에서 길은 평소 자신이 동경하던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밤을 보낸다. 동경하던 시대와 현시대를 넘나들며 길은 파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 낭만적인 시간 여행의 끝에 길의 파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SCENE 1 

골동품과 예술작품, 그리고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허세 가득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인 우디 앨런 감독은 파리의 허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꼬집어 낸다. 대표적인 장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질의 아내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장모의 골동품 쇼핑 장면이다. 이네즈는 미국 자산가 집안의 딸로 돈이 무척 많은 사람이다. 이네즈와 장모는 허름한 가게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격식이 차려진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 하나에 2만 달러 하는 의자를 사려고 한다. 장모는 말한다. "미국에선 이런 명품을 구할 수 없다"고. 사실 이 장면을 실제로 보면 웃음이 피식- 난다. 2만 달러짜리 의자가 한눈에 보기에도 허접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가치를 계산하려는 생각을 감독은 허접한 의자 하나로 비웃는다.


두번째는 이네즈의 지인과 함께 박물관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이네즈의 지인인 폴(마이클 쉰)은 교수다. 여기저기 칼럼도 쓰며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유명 지식인. 그는 질과 이네즈에게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들을 하나씩 해석해준다. 사건은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벌어졌다. 사실 질은 폴을 만나기 전날 시간 여행에서 피카소를 직접 만나고 돌아왔다. 심지어 우연찮게도 폴이 해석해주는 그림에 대해 피카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날이었다. 피카소는 그 그림을 미완의 작품이라 알려주었다. 하지만 같은 작품에 대한 폴의 해석은 달랐다. 이런저런 전문용어를 써가며 피카소 작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설명한다. 폴의 해석은 고상한 단어들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영화에선 확실히 틀린 것이었다. 관객은 그 장면을 보며 폴의 전문 지식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허세와 자만심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이런 식의 재치 있는 비판이 영화 내내 계속된다. 영화는 말한다. 파리는 지금, 고상한 단어들로 가려져 진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SCENE 2

비판은 날카롭게, 표현은 아름답게


「미드나잇 인 파리」는 관객을 모순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도시에 규정된 의미의 허상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파리에 가고 싶어 진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영화음악 덕분이다. 감독은 허상으로 가득한 파리를 그 어느 도시보다 아름다운 앵글로 담아냈다. 영화음악은 이 영화의 백미다. 우디 앨런 감독은 영화감독인 동시에 음악가다. 직접 작곡하는 일은 드물지만,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선택하는 데는 이견의 여지 없이 최고의 감각을 지닌 감독이다. 많은 평론가가 우디 앨런의 영화를 논할 때 영화음악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영화 시작과 함께 연주되는 <Si tu vois ma mere>. 재즈풍의 잔잔한 연주와 감성적인 색채로 표현되는 파리의 전경. 영화를 보기도 전에 관객을 파리에 데려다 놓는다. 물론 영화음악 속에도 감독 특유의 비판적인 시선을 담는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Let's do it>은 1928년 발표된 곡이다. 작곡가 콜 포터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도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을 음악으로 비꼬았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Let's do it>이다. 가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새와 별과 벼룩도 사랑을 하니, 우리 모두 사랑을 합시다." 콜 포터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 정작 사랑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사랑 없는 도시를 꼬집었다. 우디 앨런 감독과 콜 포터. 두 사람은 모두 낭만과 예술의 도시에 진짜 사랑이 없다 비판한다. 우디 앨런의 파리와 콜 포터의 1920년대 파리가 영상과 음악으로 만난다. 다만, 매우 아름다운 방식으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EPILOPGUE

무의미의 축제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중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밀란 쿤데라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인간의 삶이 사실은 무의미로 가득한 것이라 말한다. 사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규정된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니. 우리가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의 결핍에서 출발한 욕망에 가깝다. 수많은 사람 중 몇몇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이나, 로망이 가득한 도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때론 그 욕망이 지나쳐 과한 포장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는 길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정점에 달한다. 과거에서 만난 연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와 함께 더 오래된 파리의 황금기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파리로 돌아갈 것인가. 그가 동경하던 1920년대의 예술가들은 190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고 있었다. 과거의 황금기는 사실 시간이 지나 의미가 부여되면서 화려해진다. 길은 시간 여행중에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그들의 하루는 길의 하루와 다르지 않았다. 작품을 구상하고, 안되면 놀고, 가끔은 쉰다. 대화의 8할은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나 술주정이다. 특별할 것 같았던 예술가들의 하루도 무의미로 가득했다. 질은 과거의 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현재의 파리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걷기로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비 오는 파리다. 세느 강에서 길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길에게 그녀는 말한다.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 그제서야 길은 현재의 파리를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파리는 전세계 그 어느 도시보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수식어로 포장된 도시다. 예술, 낭만, 자유...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그 모든 수식어들도 결국 누군가의 무의미한 하루가 모여 만들어 진 것이라고.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규정한 의미가 아닌 자신만의 파리를 즐기라고 말이다. 영화는 분명 파리로 관객을 안내하지만, 종국엔 관객의 내면으로 여행지를 바꾼다. 다시 영화는 말한다. 당신이 꼭 고상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에게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현재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이다. 비 오는 파리로 영화 속 주인공이 걸어간다. 의미 잃은 파리의 골목이 숨막히게 아름답다.



글│아트래블편집부

사진제공│㈜더블앤조이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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